[단독]애플·아마존·구글 등 美 IT 공룡들, 日 수출규제 직후 다급히 삼성 찾았다

아마존·애플·구글·MS, 메모리 공급 상황 긴급 점검...삼성 의존도 높아 변수 생길라 차세대 메모리도 살펴본 듯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에 전시된 반도체 패브리케이티드 웨이퍼.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에 전시된 반도체 패브리케이티드 웨이퍼.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아마존, 애플 등 미국의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글로벌 공급망 혼선을 우려하며 직접 상황 점검에 나섰다. 아마존·애플을 포함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IT 기업 구매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급파돼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관계자들과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메모리 수급 계획 등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정부는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국 IT 업체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시켜서는 안 된다는 우리 정부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애플을 비롯한 미국 거대 IT 기업들이) 단순히 기존 거래 현황을 논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상황을 긴급 점검하기 위해 급히 한국을 찾았다”면서 “삼성전자 관계자들과 직접 일본 조치 이후 상황을 점검했다”고 전했다.

아마존, 구글, MS는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최대 고객사다. 이들은 회사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연산하고 저장하는 데이터센터를 직접 운영한다. 이들 업체가 삼성전자 D램을 대량 구매하는 배경이다. D램은 정보를 읽고 쓰는 데이터 처리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45.3% 확보했을 정도로 데이터센터 D램 공급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갈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삼성에서 구매한다.

미국의 주요 IT 회사들이 급히 삼성전자를 찾은 이유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해 메모리 공급에 변수가 생길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일본이 규제한 불화수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삼성전자 메모리 생산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다.

차세대 메모리 공급에 대한 우려 섞인 점검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D램은 수십개의 미세한 층을 겹쳐서 만든다. 삼성은 내년 초 D램 공정에 초미세화가 필요한 몇개 층(레이어)에서 극자외선(EUV) 공정을 도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핵심 소재인 EUV용 포토레지스트의 공급을 끊으면 이 공정 자체를 시작할 수 없어 IT 회사들이 차세대 메모리를 받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글로벌 고객사들에 서한과 유선상 답변 등을 통해 문의에 대응하고 있다”면서 “고객사의 세부 정보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자국 IT업계 우려에 따라 미국 정부도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조정자 역할에 나설 전망이다.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한일 갈등에 대한) 해결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과 일본은 이 민감한 이슈를 해결해야 하며, 곧 해법을 찾기를 희망한다”며 “나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IT 생태계 중심인 미국에서 일본 정부 규제로 제품 판매와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지면 세계 IT 시장이 마비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이 대 한국 수출 제한 조치를 안보 행보로 규정함으로써 글로벌 무역 질서의 물을 흐렸다”면서 “이 같은 무역 조치를 자주 쓴다면 국제무역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