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소재부품 국산화, 다시 시작하자 <7> 불화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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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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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수소는 반도체 주요 공정 중 '세정' 작업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소재다. 반도체 칩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얇은 층을 겹겹이 쌓아서 만들어진다. 불화수소는 층을 쌓는사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는 물질(산화막)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필요하지 않은 물질을 제거하면서 다음에 올라갈 층과의 전기적 연결을 최대한 매끄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액체 상태의 불화수소가 주로 쓰인다. 이 소재는 모리타, 스텔라 등 일본 회사들이 세계 70% 이상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 소재 수출을 규제한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계자들이 대안책을 찾아 급박하게 세계 곳곳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제 기술을 확보한 국내 기업은 있지만, 일본 기술을 당장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국산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슈분석]소재부품 국산화, 다시 시작하자 &lt;7&gt; 불화수소

반도체 칩은 수개월간 500~600개 공정을 거쳐서 완성된다. 칩은 여러 겹의 얇은 막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막들이 서로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정보를 처리하고 전달한다.

반도체 공정은 동그란 웨이퍼 위에 얇은 막을 쌓고, 그 위에 회로를 새긴 뒤 다시 다른 층을 올리는 작업의 반복이다.

그런데 완성된 층 위에 다른 층을 쌓기 전에는 낯선 물질이 쌓일 수밖에 없다. 산화막이다. 공기 중에 있는 산소와 자연스럽게 마찰하면서 생긴 불필요한 산화막(내추럴 옥사이드)은 층과 층 사이 연결을 방해한다. 저항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때 필요한 것이 불화수소다. 마치 기계가 공기와의 마찰로 녹이 슬면 관리자가 사포질을 하듯이, 반도체 공정에서는 불화수소로 산화막을 없애서 층 사이 연결이 극대화하도록 돕는다. 불화수소로 세정하지 않으면 공정마다 오염이 발생해 불량품이 많아지고 칩 사용자들 불만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공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불화수소는 액체 형태다. 커다란 그릇에 불화수소를 담아서 웨이퍼에 묻은 산화막을 씻어낸다. 수년 전부터 기체 형태의 불화수소도 쓰고 있다. 다양한 물질과 섞어서, 깊게 파인 회로에 묻은 산화막과 찌꺼기를 떼어낸다.

때를 깎아내는 개념이라서 세정보다는 식각(에칭)개념에 가깝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할 때 불화수소 뿐 아니라 '에칭가스'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불화수소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공장 안에 있는 웨이퍼에 닿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이 소재는 형석이라는 물질에 황산을 반응시키고 끓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이것을 끓이면 '무수불산,' 즉 물이 없는 불화수소 기체가 나온다. 중국에서 주로 생산된다. 업계에서 '일본만큼 중국도 원재료 공급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할 정도다.

무수불산은 반도체 산업에서 쓰이는 불화수소가 되기 위해 정제를 거친다. 평소 기온인 상온에서는 기체 상태인 무수불산의 특성 때문에, 액체 불화수소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된다.

아울러 비소(As)와 안티몬(Sb) 등 불순물을 제거하면서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만든다. 자주 언급되는 스텔라와 무리타가 이 일을 잘한다. 두 회사는 다른 회사들이 흉내낼 수 없는 12N(99.999999999%) 순도 불화수소를 만들어낸다. 에칭 가스도 일본 소재 회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업체들의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받은 국내 재료 회사들은 물류 이송 중 있었던 이물질 등을 제거하면서 정제 작업을 진행한다. 소자 업체들은 정제수(Di Water) 등으로 희석해서 불화수소를 쓴다. 완성된 재료는 농도가 짙어서 꼭 필요한 물질까지 벗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불량을 막는 핵심 소재인 만큼 값도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순도가 99.9%에서 99.99%로만 올라가도 같은 용량 가격이 30% 정도가 올라간다”고 전할만큼 순도도 가격 경쟁력을 좌우한다.

핵심 정제기술을 일본에서 쥐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는 이번 규제로 우리 반도체 산업의 '급소'를 찔렀다는 평가다. 일본 소재들을 당장 대체할 만한 국내 기술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당장 국내 업체와 협력해 대안을 마련한다고 해도 모든 반도체 공정을 처음부터 조율해야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한 업계 전문가는 “여러 국내 업체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론 일본 업체들의 품질을 대체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업이 미진했고, 맹독성 물질인 만큼 시민과 업체 간 갈등이 쉽게 조율되지 않으면서 국산화 속도가 느려졌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출 규제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구매팀 직원들을 세계 각 지역으로 급파해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수입처 다변화의 일환으로 글로벌 화학업체에서 불화수소를 공급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산화를 위한 테스트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도 국내 회사와 테스트를 거치거나 물량을 늘리면서 국산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