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불화수소 국산화, 민관 협력 필수

[사진= 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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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 수준으로 성장했음에도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가 그동안 국산화에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은 복합적 원인이 작용한 결과다.

국산화에 대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부족, 정부의 강화된 안전 규제 등이 겹겹이 쌓이다보니 해외 의존도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일부 기업은 불화수소 제조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지만 대량 생산에는 나서지 못했다. 이를 공급할 만한 곳, 즉 수요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불화수소 생산 업체 관계자는 “일부 업체는 비소 함량을 ppt(1조분의 1) 수준까지 낮출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지만, 시장에 진입하지 않았다”면서 “대기업이 집중 거래하는 일본의 고순도 불화수소 물량을 뺏어오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소재나 신제품이 채택되려면 기존 것보다 나은 강점이 있어야 한다. 품질이 우수하거나 동일 품질에 가격경쟁력이 확보된 사례다.

그러나 후발주자가 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국내 기업이 불화수소 제조 기술이 있어도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배경이다.

구매자 쪽도 이유는 있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일본에서 불화수소를 수입한 것은 기술력은 높고, 단가가 저렴해서”라며 “굳이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평행선을 달린 결과가 지금과 같이 일본 소재에 종속되는 문제다. 협력의 끈을 놓지 않고 일정 수준 국산화를 진행했다면 중소기업 경쟁력도 향상되고, 대일본 소재에 대한 의존도도 낮출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협력이 미진한 가운데 정부 규제 강화도 불화수소 국산화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2015년 개정한 화학 물질을 규제하는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모든 화학물질에 유해성 심사 및 평가 의무를 지웠고, 신규 화학물질 등록 및 보고를 엄격히 했다. 취급시설 기준은 79개에서 413개로 5배 이상 증가했다.

한 화학업체 고위 관계자는 “에칭가스 등을 개발할 때 여러 화학물질을 배합, 시험할 수밖에 없는데도 그때마다 새 화학물질로 신고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겼다”면서 “또 정부가 화학물질 정보 유출 가능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는 회사 기밀과 직결돼 경계할 수밖에 없고, 투자 저하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민관 중·장기 협력 필수

민관의 태도는 지난 1일 일본 수출 규제 이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정부는 산업계 의견을 대폭 수용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정부는 현재 불화수소 등 신기술 개발 촉진을 위해 '신성장 연구개발(R&D) 비용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기업 20~30%, 중견기업 20~40%, 중소기업은 30~40% 등 최고 수준 세액공제율을 적용받는다.

반도체 관련 R&D에 주 52시간제를 예외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신규 화학물질의 이른 출시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정부 각종 지원→대기업 투자→중소기업 연구·생산 등 밸류체인 구축을 앞당겨 이른 국산화에 일조할 전망이다. 다만 중·장기 민관 협력은 필수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은 “대기업이 검증된 일본 소재·부품만 쓰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면서 “정부와 대기업이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중소·벤처기업, 부품·소재·장비를 공동 개발해야 소재 국산화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