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펀치]<121> ICT 앞세운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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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명의 사이버펀치]<121> ICT 앞세운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라

“지난번 농구 시합에서 졌으니까 한 대 맞아라.” 힘없는 아이는 원인과 결과가 불확실한 시비로 공격하는 다른 반 아이의 주먹질에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기는 척 태권도라도 배워 둘 걸 하는 아쉬움은 이미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드는 격이다.

중국 대륙 공격을 위한 통로를 핑계로 한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이던 구한말 치욕의 아픔이 떠오른다.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 규제에 이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해제까지도 거론되기 때문이다. 국제 관례를 무시한 어이없는 처사로 치부하기엔 우리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단순히 “주눅들지 않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제조 기반 초토화와 증권 시장 와해로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21> ICT 앞세운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라

일본이 침략 명분을 내세워 시비를 거는 모습이 많이 닮았다. 대한제국 분열을 획책하고 반도체 핵심 부품이라는 무기를 동원하는 비열함 때문이다. 이에 휩쓸려 우왕좌왕하고 분열하는 정치권과 지도층도 국민을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라도 신종 침략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취약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적이 비단 일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을 무기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전쟁은 핵전쟁만큼이나 심각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화웨이를 핑계 삼은 '정보통신기술(ICT) 경쟁'으로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시작했다. 치킨게임처럼 양쪽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자존심 싸움까지 가세, 점입가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대 한국 경제 보복도 'ICT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사한 공격에 SW가 무기로 사용될까 우려된다. 운용체계(OS), 데이터베이스(DB), 인공지능(AI), 정보보호 등 기반 기술에 취약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기술의 공급이 중단될 때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21> ICT 앞세운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라

ICT 기반 서비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데이터 저장고인 클라우드가 이미 미국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 점령당하고, 정보보호 서비스와 정보통신 인프라도 외국 제품으로 도배질된 형국이기 때문이다. 자체 개발보다 도입을 택한 결과다. 이러한 환경은 전시에 살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선제 대응하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재앙을 피할 수가 없다.

이제라도 SW 개발 역량을 길러서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한다. 모든 SW를 자체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핵심 SW를 구비해서 압박에 대항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위급 상황에서 단기간에 대체재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SW는 ICT 기반 경제전에 대비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기술력과 함께 외교 능력이 변화해야 한다. 관계 지향형 외교보다는 실력을 앞세운 외교 활동으로 협상의 우위를 점해야 한다. 미·중 간 화웨이 사태나 일본의 경제 보복을 반면교사로 삼아 '대응에 앞서 대비'하는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처 간 협업은 필수다. 산업과 외교 부처가 뒷전으로 물러나고,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우는 형상은 이미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다.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21> ICT 앞세운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라

국가 전체가 일등이라는 신기루를 쫓기보다 생존을 위한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침몰하지 않는 기초가 최종 승부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미래 전쟁은 군비 경쟁이나 정보전을 넘어 기술력이 힘이라는 사실을 미국과 일본이 실증하고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세계 수준의 ICT 기술력 확보에 투자를 확대할 시점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