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민화 벤처협회 명예회장을 보내며

[데스크라인]이민화 벤처협회 명예회장을 보내며

“그렇게 합시다.” 예상 밖의 손쉬운 승낙이었다. 기자는 지난 2017년 봄 업무 협의차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이민화 KAIST 교수 겸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사무실을 찾았다. 그해 9월 초 경기도가 주최하는 '빅포럼'의 공동주관사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취지와 짧은 브리핑을 들은 그의 답변은 간결했다. 결과적으로 2017년 빅포럼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기조강연, '노동의 종말' 저자 제러미 리프킨의 특별강연 등 그해 빅포럼은 국제행사로 발돋움했다. 이 교수가 아니었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프로그램과 출연진이었다.

지난 주말에 비보가 날아왔다. 눈을 의심했다.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해 왔기에 믿기질 않았다. 운명을 달리한 그 전날에도 지방에서 강연을 했다는 지인들 말은 슬픔을 배가시킨다. KAIST 학생들 역시 충격에 빠졌다. 벤처업계는 애도에 잠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황망함이 넘쳐났다. 주말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벤처 1세대들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했다. 조문 행렬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창업자,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김형순 로커스 의장, 장흥순 블루카이트 대표, 김병기 오리엔테파이낸스그룹 대표 등 이민화 명예회장과 한 세대를 함께한 이들 역시 하나같이 아쉬움을 표했다.

이 명예회장은 1을 얘기하면 1+알파를 되돌려 준 사람으로 기억된다. 2017년 당시에도 남경필 지사에게 경기도정에 블록체인 결합이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벤처라는 말이 생소한 시기에 한국벤처협회 설립을 주도했다. 코스닥 설립도 앞장서서 추진했다. 대학교수로 변신한 후에도 색다른 지도 방식을 시도했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기업 경영 노하우와 경험 전달에 탁월했다.

이 명예회장의 가장 큰 특별함은 미래를 보는 혜안이었다. 빅데이터 산업과 공유경제 분야에서는 탁월한 감각을 자랑한 것으로 기억된다. 도전과 실험 정신도 본받을 게 많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3년 전인 1985년 그는 초음파 의료기기 국산화에 도전했다. 현재 삼성메디슨이 그가 그해 설립한 메디슨이다. 보수적인 의료기기 시장에서 우리 중소벤처기업이 사실상 첫발을 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병원을 수출 품목으로 키우려는 발상 전환도 그였기에 가능했다. 이 회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병원수출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일찌감치 보건의료 분야에 애정을 남다르게 쏟은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도전과 혁신 아이콘 이민화는 떠났다. 남은 것은 후배 벤처인, 중소기업인들 몫이다. 그의 열정과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말하지 않은 유훈이 아닐까. 넘겨준 바통은 앞으로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과 갓 사업에 시작한 스타트업이 만들어야 한다.

그는 당당했고 거침없었다. 기자와 소주 잔을 기울일 때면 기업가정신을 강조했다. 앞으로 한국 벤처업계를 이끌어 나갈 기업인들에게 그는 '혁신의 본질은 실패'라는 큰 가르침을 남겼다.

이 명예회장은 31일 낙산해변에서 쌍무지개를 배경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이 가족과 보낸 마지막 여름휴가여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동해 하늘에 그를 비추던 쌍무지개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되길 희망한다. 6일 아침 발인을 끝으로 그는 벤처와의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부디 좋은 곳에서 영면하소서….

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