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한일 경제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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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석 카페24 대표
<이재석 카페24 대표>

역사 속 전쟁 대부분은 비합리한 판단의 결과다. 만약 2차 세계 대전 결과를 알 수 있었다면 독일과 일본은 결코 전쟁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10년 이상 중동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면서 지루한 전쟁을 이어 갈 것을 알았다면 2001년의 미국도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

일본 정부가 올해 한국을 상대로 시작한 경제 전쟁은 어떨까. 일본 정부는 이달 소재, 부품,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첨단 산업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을 전장으로 삼아 한국을 상대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전략적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공격으로 한국 기업은 당분간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로 보면 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더 뼈아픈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이번 전쟁도 잘못된 판단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이 산업 경쟁력을 갖춘 소재와 부품은 아날로그 기술 기반 제품이다. 아날로그 상품은 디지털 기술 기반 상품과 비교해 새로운 공급처를 찾기가 까다롭다. 예를 들어 통신사의 단문문자메시지(SMS) 발송 서비스는 다소 쉽게 다른 회사 상품으로 가입 채널을 바꿀 수 있다.

완제품의 질을 좌우하는 소재·부품 대체재를 찾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품질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 대부분은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추며 신뢰를 쌓은 협력사와 거래 관계를 계속 이어 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산업 구조가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일본이 소재·부품 분야에서는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이유다.

[월요논단]한일 경제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그러나 이제 일본 기업이 소재·부품 산업에서 확보한 경쟁력에도 금이 가고 있다. 소재·부품 부문의 미세한 아날로그 영역을 고도화된 생산 장비, 모듈화된 공정, 디지털 혁신 등으로 무장한 후발 주자가 따라잡을 수 있는 시대다.

공급망을 지지하는 신뢰 관계가 무너진다면 일본의 마지막 강점인 소재·부품 분야의 상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대안을 찾기도 어렵고 굳이 위험(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없어 협력 관계를 이어 갔다. 이제는 우리 기업이 생존을 위해 다양한 대안과 대체 거래처를 찾아야만 한다. 새로운 대안 찾기 노력은 현재까지 확보한 핵심 소재·부품의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3개월 이후부터 눈에 띄는 결과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유럽 등 다른 국가의 기업들도 앞으로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공급망보다 대안을 더 낼 수 있는 채널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정치 오판으로 안정된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일본 기업의 신뢰도에 균열이 생긴 탓이다.

한-일 경제전쟁은 세계 소재·부품 산업에서 독보하는 경쟁력을 갖춘다는 일본의 믿음을 각국 기업 앞에서 테스트하는 공개 무대가 될 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의 선전포고는 자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낮추고 후발 주자의 추격을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결말을 방지하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 이웃과 윈윈하는 길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각자 자국의 강점을 활용, 공급망을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이재석 카페24 대표이사 jslee@cafe24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