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조국을 둘러싼 '답정너'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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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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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언론의 비밀 하나. 언론은 간혹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지 않고 미리 방향을 정한 후 그에 맞춰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나 같은 데스크가 기자에게 미리 '답'을 던지고 취재를 지시한다. 때론 기자 스스로 '답'을 정해 놓고 취재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언론사 나름의 가치에 따라 '프레임'을 정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끼워 맞추기'다. 기사가 나오면 호응하는 독자도 있고, 반대로 '악플' 공세를 퍼붓는 독자도 있다. 물론 미리 정해 놓은 답에 대해 엇갈리는 평은 오롯이 언론사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그대로 답하면 돼'를 줄인 신조어) 싸움이 한창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차기 법무부 장관은 오래 전부터 조 후보자의 자리였다. 수개월 전 조 후보자의 입각설이 공론화되자 야권이 강력 반발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답이 정해진 개각이었다.

답정너식 대응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보기에 조 후보자는 이미 자격 미달이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조 후보자에게만큼은 절대 장관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원칙' 아래 일사천리로 공략 절차를 진행했다.

조 후보자는 '가짜뉴스'라고 항변하고, 신상 해명이 아닌 정책 구상을 밝히며 국면 전환을 노렸다. 그러나 야권의 답정너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야권이 조 후보자에게 내놓으라고 하는 답은 '자진 사퇴'다.

여야의 답정너 싸움 속에서 안타까운 점은 정작 중요한 '답'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인사청문회다. 야권은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도 오르지 못하고 퇴장하길 원하지만 과욕이다. 최소한 공식 자리에서 설명(또는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 조 후보자 논란 때문에 다른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일정도 오락가락할 판이다. 청문회는 청문회대로 여는 게 국회의 역할이다.

청문회가 열리면 지난한 답정너 싸움의 승리자는 누가 될까. 현재로서는 조 후보자가 불리한 듯 하다. 조 후보자의 딸 논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자녀교육 문제를 건드렸다. '보이지 않는 손'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당 대학에서 잘못된 부분은 확인됐다. 이는 자연스레 2030세대의 '스펙' 문제로 이어진다. 안 그래도 입시·취업 전쟁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일이 많은 2030세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2030세대는 젊은 층 지지에 목말라 있는 야당은 물론 여당의 아킬레스 건이기도 하다. 내년 총선이 열 달도 채 남지 않았다. 2030세대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순간 조 후보자를 엄호할 여당 의원은 몇 명이나 될까.

답정너 싸움의 판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흘러갔다. 조 후보자가 시련을 딛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자격을 얻을지, 촉망받는 현 정권의 인사 명단에서 빠진 채 당분간 수면 아래로 내려갈지 길어야 1~2주면 판가름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요즘 여기저기 답정너 의혹 제기가 넘쳐나다 보니 억지로 끼워 맞춘 내용이 적지 않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데스크로서 답정너 취재 지시는 가능한 한 피해야겠다는 다짐을 뒤늦게 해본다.

이호준 정치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