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法 "페북, 처벌 근거가 없다" 면죄부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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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法 "페북, 처벌 근거가 없다" 면죄부 발행

'잘못은 했는데, 처벌 규정이 없다.'

세계적 관심이 집중된 페이스북-방송통신위원회 행정소송에 대한 법원 1심 판결 결과는 이렇게 요약된다.

낡은 전기통신사업법 체계가 변화한 정보통신기술(ICT)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CP)가 국내 이용자에게 피해를 끼쳐도 처벌하지 못하는 황당한 결과로 이어졌다.

콘텐츠 사업자도 트래픽 접속경로(라우팅)를 변경해 이용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소송 과정에서 확인된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현실 무시한 판결…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산업계가 떠안아

서울행정법원은 22일 페이스북-방송통신위원회 소송에서 페이스북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는 즉각 항소하기로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라우팅 변경이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 이용자가 피해를 봤더라도 그 정도가 현저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페이스북이 승소한 핵심 이유다.

법원은 페이스북이 라우팅을 변경해 이용자 피해를 유발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느리더라도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는 됐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서비스 이용을 못하도록 막는 것과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해석했다.

법원은 또 '현저함'이라는 표현도 엄격하게 해석했다. 페이스북 라우팅 변경으로 서비스 이용 속도가 느려지기는 했지만 국제기구 등이 인정하는 지연시간 기준에는 크게 못 미친다고 판단했다.

통신 업계는 법원 판단이 현실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CP가 라우팅 변경을 통해 서비스 속도를 느리게 하는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또 통신 속도가 빠른 국내 특성상 조금만 속도가 느려져도 고객 불만이 크게 증가하는 현실도 감안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페이스북이 승소하면서 국내 통신사업자와 규제 당국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더라도 글로벌 CP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통신사업자는 국내 인터넷 트래픽 40%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CP 대상으로 망 이용대가 협상이 현저하게 곤란해졌다.

지금도 힘의 우위에 선 글로벌 CP가 망 이용대가 협상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데 접속경로 변경 권한까지 휘두른다면 망 품질 유지 의무를 완전히 혼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글로벌 CP는 접속경로를 변경해 고의로 이용자 피해를 유발, 이에 대한 고객 불만을 모두 통신사가 떠안도록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엄청난 고객 불만에 직면한 통신사는 공짜 또는 그에 준하는 낮은 가격으로 캐시서버를 내줄 수밖에 없어진다.

통신사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국내 CP도 결코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망 이용대가 부담을 벗어던진 글로벌 CP는 마음껏 고화질 동영상을 제공하는 반면에 국내 CP는 화질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경쟁력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입법미비' 쟁점될 듯

법원이 페이스북 손을 들어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입법 미비다. CP가 망 이용대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라우팅을 변경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마땅한 규정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 통신사업자는 기간통신사업자와 부가통신사업자로 지위가 나뉘며 기간통신사업자 규제가 가장 세고 뒤로 갈수록 규제가 약해진다.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이 기간통신사업자이고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 등이 부가통신사업자다.

문제는 전기통신사업법이 기간통신사업자, 즉 통신사에게만 통신망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이다.

통신사는 전기통신사업법 제28조 이용약관 신고 의무, 제32조 이용자보호 의무 등을 통해 망 품질을 보장 의무를 진다. 구체적으로는 이용약관을 통해 서비스 불능 또는 서비스 장애발생 시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콘텐츠 사업자는 이 같은 책임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괴리가 깊다. 페이스북 사례에서 보듯 CP가 일방으로 라우팅을 변경해 망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통신사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콘텐츠 사업자는 '책임은 없고 권한만 누리는'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부가통신사업자에도 망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통신 업계와 국회, 전문가 사이에서 나온다.

국회에는 콘텐츠 사업자에게도 망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됐다. 김경진 의원은 일정 기준 이상 부가통신사업자에 서비스 품질 유지 위한 기술 조치를 취하도록 했고 유민봉 의원도 서비스 품질 유지 위해 관리적·경제적·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변재일 의원은 일정 규모 이상 콘텐츠 사업자에 국내 캐시서버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내놨다.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전기통신사업법 통신사업자 지위를 세분화해 부가통신사업자 중 규모가 큰 사업자에게는 좀 더 무거운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법적 허점 탓에 판결 결과가 달라졌을 뿐 페이스북이 이용자 이익을 침해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이용자 피해를 예방할 법 제도 개선에 속히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