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7주년:기술독립선언II] 금융 규제샌드박스, 이종산업 간 '빅 블러' 현상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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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규제샌드박스는 핀테크 업체 자생력을 키울 뿐 아니라 금융과 다른 산업간 융합을 촉진시켰다. 금융과 통신, 금융과 자동차, 신재생에너지와 개인간(P2P)금융, 부동산과 정보기술(IT)이 만나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지난 4월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시행 이후 7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차수별로 4월부터 7월까지 △1차 9건 △2차 9건 △3차 8건 △4차 6건 △5차 5건 △6차 5건 총 42건이 지정됐다.

그동안 금융회사와 핀테크 업체 총 37곳이 참여했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카드 등 6개사가 10건의 서비스, 비바리퍼블리카와 레이니스트, 핀크 등 핀테크 업체 31곳이 32건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 중 보험 2건, 대출비교 2건, 여신 서비스 1건, 주식대차 플랫폼 1건, SMS인증 방식 결제 1건 등이 실제로 시장에 등장했다. 9월 중 대출비교 4건, 알뜰폰 1건, NFC 결제 1건, 신용정보 1건, 전자금융 1건 총 9건의 서비스가 추가로 출시될 예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빅 블러' 현상…이종산업 간 시너지

진입장벽이 높던 금융업이 점차 다른 영역과 경계선을 지우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알뜰폰 사업을 통한 금융·통신 융합' 모델로 1차 혁신금융 서비스로 선정됐다.

LG유플러스 5세대 통신(5G)망을 빌려 내달 'KB알뜰폰' 서비스를 시작한다. 기존 알뜰폰 서비스와 달리 삼성전자 최신 스마트폰 기종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한다. 통신사 대비 절반 이하의 저렴한 요금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국민은행 전용 유심(USIM)이 인증서 역할을 하는 점도 특징이다. 향후 국민은행뿐 아니라 KB금융 계열사 금융 거래 절차도 대폭 간소화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자동차 안의 환전업소'를 10월 중 선보인다. 금융에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접목,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환전 신청한 외화를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찾을 수 있게 했다. 현행법상 은행이 외국환 업무를 제3자에게 위탁할 수 없지만 규제샌드박스로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는 게 가능해졌다.

금융과 유통이 결합된 모델도 등장했다. NH손해보험은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활용한 보험 e쿠폰'을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모바일 보험선불쿠폰을 할인가에 구매 또는 선물하고 'NH손해보험 다이렉트 보험 상품' 가입 시 보험료로 납부할 수 있는 서비스다.

신재생 에너지도 새로운 핀테크 영역으로 들어왔다. 루트에너지는 11월 중 태양광. 풍력에 지역주민이 투자하는 P2P금융 플랫폼을 오픈한다. 지역주민 투자한도는 차입자당 4000만원, P2P업체당 1억원으로 P2P대출 가이드라인 요건보다 상향조정된다. 지역주민에게는 우대금리를 제공, 지역개발 사업 이익을 공유한다.

프롭테크 사업도 눈길을 끈다. 프롭테크는 부동산 자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IT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 서비스다.

카사코리아는 부동산 유동화 수익증권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방식으로 일반투자자에게 유통하는 서비스로 2차 혁신금융 서비스에 지정됐다. 9월 모의테스트를 마치고 연내 서비스를 출시하는 게 목표다.

◇“또 다른 규제가 될 수도 있어”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서비스는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한계다. 여러 기술이 접목된 일부 금융 서비스는 담당 부처별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사업자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부처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암호화폐 기반 해외송금'은 금융당국의 부정적 기조를 감안, ICT 규제샌드박스에 신청했음에도 번번이 심의에서 제외됐다. 관계 부처 논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특례 인정을 받은 규정 이외 다른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도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지정 취소로 이행이 불가능한 경우로 이용자 동의를 얻어 계약을 조기 종료해야 하는 부분도 사업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양승현 보험연구원(KIRI) 연구위원은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주요 내용 검토' 보고서에서 “새로운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예기치 못하게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오히려 제재를 경감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며 “애초 예측과 달리 사업성이 없다고 판명된 경우 사업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사전 고지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혁신금융 사업자에게 배상 문제가 발생했을 시 대처 방안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법에서는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업자는 금융위원회와 상의하라는 내용만 있으며, 사업자 분쟁처리 및 조정절차도 업체가 자율적으로 마련하게끔 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법령에 사업자 분쟁처리·조정절차가 명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손해에 대한 고의, 과실이 없다는 입증 책임을 사업자에게 부과, 사업자 배상 책임 부담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며 “사전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나 해당 상품 개발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