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창업 실전강의]<85>창업초기부터 고객에게 많은 선택지를 줄 필요는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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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비창업자 고민 중 하나는 '제품군' 설정에 있다. 사업 초는 다양한 상품군을 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빈약한 제품 라인업이 사업 성패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창업가가 가능한 한 선택지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하지만 정작 기존에 자리매김한 기업은 불필요하게 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견 이런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제 우리가 마트나 백화점에서 마주치는 제품 수가 늘기도 했다.

미국은 1949년 식료품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이 3700여 가지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는 무려 4만5000종이 넘는다. 하지만 이런 증가율은 전체 증가한 물품 수에 비하면 제한된 상승폭에 불과하다. 즉, 넘쳐나는 물건 중에서 그나마 선별해서 매장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여러 선택지를 유지 관리하는 과정에서 투여되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들의 최종 선택을 보다 쉽게 이끌어내기 위한 이유가 더욱 크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로 설명한다. 선택의 역설이란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소비자들이 보다 적합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어 만족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선택할 대상이 많아지면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대상을 선별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진다. 실제로 최종 선택한 것이 최적의 선택이 아닐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선택지가 많을 경우 설사 최종 선택한 물건이 최적의 선택이었다 해도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나에게 더 적합한 대안은 따로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반드시 고객의 만족감을 높이는 일이 아닐 수 있다.

미국 스와스모어대학 심리학 교수 배리 슈워츠는 잼을 이용한 흥미로운 실험을 수행한 바 있다. 슈워츠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쇼핑센터에 데려와 잼을 구매하도록 요구했다. 이 때 한 그룹에는 6개의 잼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그룹에는 24개의 잼을 보여주었다. 실험 결과 24개의 잼이 진열돼 있을 때 고객들이 해당 매장을 더욱 많이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정작 최종 구매량은 6개의 잼이 진열됐을 때가 오히려 더욱 많았다. 슈워츠 교수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소비자들의 최종 선택을 더욱 주저하게 만들었고, 결국 사람들을 쫒아내는 효과만 가져왔다고 실험 결과를 설명하였다.

실제 이러한 선택의 역설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물건에서도 선택의 역설을 활용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백화점은 말 그대로 100가지 물건이 있는 곳이라는 뜻만큼 다양한 물건을 구비하고 있다. 따라서 사은품으로 제공할 수 있는 물건의 폭도 다양하게 구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수증을 들고 사은품 코너로 올라가면 정작 사은품 종류는 3~4개 정도 뿐이다. 이렇게 한정된 품목으로 사은품을 구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선택의 역설 때문이다. 선택 폭을 늘리면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역설로 선택지가 많아지면 소비자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선택지를 줄이거나 최적의 대안만을 제시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대안만 주어지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단일 대안 회피(single-option aversion) 성향이라고 한다. 단일 대안 회피에 따르면 사람들은 추가 대안을 찾고 대안 비교를 통해 서로 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한 뒤 최종 선택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딸기잼만 보여주면 뭔가 더 찾아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아 결국 구매를 거부하고 다른 매장의 딸기잼도 찾아보려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제품군을 굳이 억지로 늘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객들이 해당 회사의 제품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의 라인업 정도는 필요하다. 지금 기획하고 있는 상품 내지 서비스에서는 이러한 수준의 제품군이 어느 정도 선인지 고민해 보기 바란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