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질병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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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건 이동건게임연구소장
<이동건 이동건게임연구소장>

11세 아들과 함께한 축구 게임을 4년째 즐기고 있다. 단순히 축구 게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단 하나를 관리·경영하며 선수 영입과 방출, 진형과 전술 설정까지 해야 한다. 공동구단주인 아들과 나는 우리 팀의 운영 방향에 대해 늘 고민이 많다.

게임과 관련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 큰 문제 없이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고등학생인 누나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가족 구성원 모두가 게임을 아이의 건전한 취미로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 일을 마치고 나면 눈치 보지 않고 세상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엄청난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최강의 문화 콘텐츠임을 인정해 주는 대신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함께 게임 이용 규칙을 만들고 시행하며, 스스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다행히 아들은 실컷 게임을 즐기면서 원만한 교우관계를 맺고 있다. 학업 성적도 만족할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부자는 최근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회 움직임 때문에 많이 시무룩해진 상황이다.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해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순간 우리 가족이 아들의 게임문화에 대해 취해 온 방식은 모두 위험천만한 일이 됐다. 도대체 어느 할머니와 엄마가 중독에 빠져 병에 걸릴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를 흔쾌히 허락해 주며 취미생활로 존중해 줄 수 있겠는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코드 부여는 단순히 게임을 중독물질로 볼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관점차 문제가 아니다. 세대별로 이해의 폭이 다를 수밖에 없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에 대해 대화·소통·공감으로 이견을 좁혀 나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 자체를 박탈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게임에 대한 갈등으로 부모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문화와 취미, 재미와 절제, 시간 배분과 약속'으로 채워져야 할 내용이 '중독과 금단 증상, 정상과 비정상, 치료와 환자, 질병과 증상' 같은 용어로 대체된다. 과연 이런 어휘로 아이와의 대화에서 긍정의 결과물을 끌어낼 수 있을까?

'중독'은 '강박'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 특정 물질(또는 행위)밖에 없다고 각인되는 순간 발생한다. 특정해야만 현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 중독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아이들 대부분은 강박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게임을 하고 있다. 또 현재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재밋거리이기도 하다.

부모는 WHO의 권위를 부정할 수 없기에 멀쩡한 아이를 환자 대하듯 취급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에게 내린 중독 판정을 납득할 수 없게 된다. 갈등의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문화 현상에 대한 구세대의 반감과 몰이해가 몇몇 전문가란 사람들의 의견으로 명분을 획득하면 공포가 확산된다. 그리고 사회문제가 된다. 치료를 위한 온갖 클리닉이 생겨나고, 새로운 치료 예산이 편성된다. 이미 50년 전에 사회학자 스튜어트 홀이 설명한 '도덕공황 이론' 실례를 현재 우리는 게임을 통해 다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린 이미 여러 차례 겪었다. 10대 때 그렇게 헤비메탈과 록 음악을 많이 들었지만 아무도 악마 숭배자가 되지 않았고, 어릴 때 바보상자인 TV를 그렇게 열심히 봤지만 아무도 바보가 되지 않았다.

'스트리트 파이터'로 싸움을 배웠고 '테트리스'로 기다림의 미학을 느꼈다. '스타크래프트'로 전략과 전술을 이해한 세대가 이제 어엿한 학부모가 됐다. 이제 우리 아이들만큼은 제2의 헤비메탈과 바보상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 문화가 존중받는 열린 사회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게임을 중독으로, 질병코드로 재단하려는 사람들에게 도덕공황 이론의 사회학자 홀의 말을 인용한다. “지배문 화는 도덕공황을 통해 민중의 악마를 찾는다.”

이동건 이동건게임연구소장 tryntr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