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86>역빈티지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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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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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함정(Vintage Effect). 혁신에는 흔한 현상이다. 새 혁신 기술은 매번 새 시장의 승자를 낳는다. 심지어 이들은 이 시장엔 새내기인 경우도 많다. 이들에게 기존 강자가 번번이 자리를 내놓는다.

1972년 오스본 컴퓨터는 첫 랩톱 컴퓨터를 내놓는다. 광고에는 빨간 넥타이에 상자 같은 랩톱을 든 채 만면에 웃음 지은 한 남자와 '오스본 개인용컴퓨터(PC)는 당신과 출근을 함께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곧 이 광고는 빛이 바랜다. 훨씬 가벼운 새 랩톱들이 이 24파운드짜리 '오스본 1'을 밀어내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혁신에는 역설이 많다. 노력과 성공이 서로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많은 혁신 제품이 실패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살아남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에 어떤 것은 행운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1846년 일라이어스 하우는 첫 상업용 재봉기를 출시한다. 모양은 요즘과 제법 달랐지만 분명 혁신 제품이었다. 1846년 9월 10일자 미국 특허 번호 4750로 등록했다.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도 소개된다.

수요가 보이자 아이작 메릿 싱어가 뛰어든다. 싱어는 요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개량 재봉기를 내놓는다. 거기다 싱어는 제품 개량과 마케팅 투자에 여유가 있었다. 가정에는 할부 판매도 했다. 유럽에는 일찌감치 판매망을 놨다. 실상 미국 최초의 다국적기업으로 불린다. 훗날 하우는 특허소송으로 꽤 많은 보상을 받았지만 자신이 처음 만든 시장이 '싱어'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3M 스카치 테이프는 정반대다. 리처드 걸리 드루는 포장용이나 박스를 봉하는 용도로 개발했다. 출시 즈음 대공황이 닥친다. 대개 재앙인 이것이 순풍이 된다.

경기가 안 좋으니 버릴 물건도 스카치 테이프로 어떻게든 동여매서 쓰려 했다. 공업용 제품이 새 고객을 만난 셈이었다. 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용법을 탐색하는 수많은 소비자들이었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소니는 워크맨으론 대성공을 했지만 VCR는 실패했고, 디지털카메라로는 긴 투자 끝에 시장에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네스케이프는 인터넷 브라우저의 효시였지만 곧 50개 넘는 다른 브라우저와 경쟁해야 했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시장을 넘겼다. 1972년에 출시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최초의 게임 콘솔이었지만 이 시장은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승자가 바뀌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어쩌면 원인은 혁신 자체보다 혁신 속도에 있었다. 혁신 속도가 더디면 시장은 보전된다. 그러나 둘 가운데 하나라도 급변하면 시장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3M은 스카치 테이프를 내놓은 지 30년 만에 매직 테이프를 내놓았지만 이 정도 혁신으로 충분했다. 반면에 디지털카메라는 6만픽셀이던 화소가 600만픽셀이 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니가 이 시장을 지킬 수 있은 데에는 소니다운 투자와 기술력이 있었다.

종종 기업은 혁신을 이분법으로 본다. 그리고 수요나 시장의 변화는 무시하기 일쑤다. 혁신 기업에 이런 이분법과 근시안은 함정이 된다. 혁신 기업에 두 가지는 필수다. 기술만큼 시장은 따져봐야 할 주제다.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더 격랑을 만드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빈티지 함정은 피하기 어렵지만 거슬러 갈 수는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