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노벨상과 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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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노벨상과 소부장

2019년 노벨상 수상자가 모두 가려졌다. 이번에도 '남의 잔치'다. 수상자를 보면서 부러움 반 아쉬움 반의 감정을 느낀 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특히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규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이런 감정은 더욱 구체화됐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4년 물리학상, 2015년 생리·의학상, 2016년 생리·의학상 등 3년 연속 수상했다. 지난해와 올해도 연이어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0년 이후 성과만 놓고 보면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더불어 '쌍벽'으로 불릴 만한 성적이다.

일본이 성과를 올리는 배경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긴 호흡의 연구가 가능한 연구 환경이 일조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20년 동안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1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구를 시작한 시점부터 노벨상 수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0년이다. 선행 연구를 장기간 이어 가며 과학기술계에 충분한 기여를 했을 때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노벨상 수상자의 연령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도 이 때문이다. 일본 수상자들 또한 이런 연구 과정을 보낸 사람이 많다.

올해 화학상을 수상한 일본 화학회사 아사히카세이의 요시노 아키라 박사만 놓고 봐도 평생을 리튬이온전지 연구에 매진했다. 취재차 연락을 한 리튬이온전지 제조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연구 성과를 논하기 전에 선행 연구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 놀랍고 부럽다”고 말했다.

일본의 연구 환경은 일본이 무기화하고 있는 이른바 '소부장' 기술 경쟁력과도 맞닿아 있다.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소부장 종합 대책 관련 인터뷰에서 “장기간 연구를 수행해 쌓은 노하우와 이를 활용한 거점을 형성한 것이 일본의 독특한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 소부장 경쟁력 부문에서 일본의 뒤를 쫓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긴 호흡으로 안정적 연구를 하며 노하우를 축적하는 환경과 시간이 필요하다. 소부장 부문에선 당장 자립화가 시급한 기술이 있지만 한달음에 격차를 좁히기에는 어려운 분야가 많다. 당장 눈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며 '니 탓 내 탓'을 하면 결과는 빤하다. 정책은 추동력을 읽고 성과는 요원해지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진하다는 비판도 달게 받아야 하지만 시간 또한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비효율을 제거하되 끈기를 발휘해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