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69>과학기술공동체 역할이 중요한 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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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역삼역 사거리 방향으로 테헤란로를 100여m 따라가면 제법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도로명 주소로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인 이곳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두 기둥 위에 기와를 얹은 국기원 정문이 나온다. 그 왼편엔 '책은 만인의 것'이라고 각인된, 제법 큼직한 표지석과 노란색에 다른 여러 색으로 층층을 단장한 4층짜리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주소로 국기원이 7길 32, 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7길 21이라면 7길 22에는 한국과학기술회관이 있다. 이곳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자리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과총은 우리나라 이공계의 전 분야에 걸친 학술단체와 각종 관련 협회·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 590여개 과기 단체를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표 단체다. 1966년 9월에 창립됐으니 1967년 3월에 설치된 과학기술처보다 앞서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만큼이나 역사가 오래 된 단체다. 지금은 수백만 과기인을 대변하는 과기 공동체의 장으로 홈페이지는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처럼 기업과 산업이 중요해지고, 과기를 경제 성장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4차 산업혁명과 최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서 보듯 무한경쟁이 화두가 된 시점에서 과총의 역할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생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첫째 우리 과기 정책에 이젠 새로운 작동 방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실상 우리는 지난 10여년 동안 추격자형(패스트 팔로어)에서 탈피해 선도자형(퍼스트 무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보기에 따라서는 2000년대 중반에 수립된 제2차 과학기술기본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정책의 대전환이 아직 완전히 궤도에 오르지 못한 데 고민은 시작된다.

둘째는 그동안 우리 과기 및 연구개발(R&D) 정책이 지나치게 성과 중심으로 흘러온 것 아닌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 탓이다. 성과 관리나 효율성이 당연시되고 핵심성과지표(KPI) 같은 관리 용어가 일반화 및 상식이 됐으며, R&D 성과물이 컨베이어벨트 위의 조립품처럼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온전히 문제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24조원의 R&D 예산을 투자하고 민간투자까지 합치면 줄잡아 80조원 규모의, 세계 5위 수준의 R&D 투자를 수행하는 우리에게서 지금 같은 성과 중심, 시스템 중심 전략이 여전히 최선일까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면 하는 것이다.

실상 수월성 또는 선택과 집중만큼 지속되고 균형 잡힌 긴 안목이라는, 과기 정책이 지향할 만한 여러 선택지가 있다. 10여년 전에 이제는 따라잡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공감을 얻은 것처럼 지금은 지나치게 경직화된 것 같은 목소리가 더 흔해지고 있고, 여기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실상 과총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지금 우리 과기 정책에 '과학기술자 공동체'라는 화두를 던져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역할을 과총이 나서서 자임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과기 정책이 온전히 과학기술자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주체가 되지 못하고 수동형으로 따라가야 한다면 그것 역시 마땅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동안 성과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정책이 중요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듯이 지금 상황 속에서 다른 선택이 필요하지 않은지 따져볼 때가 됐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과총의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단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