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한국 반도체의 저력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소재의 대 한국 수출을 규제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지난 7월 전격 이뤄진 일본 조치에 모두가 크게 걱정했지만 기업과 정부가 기민하게 대처한 덕에 별다른 차질 없이 위기를 넘기는 모습이다.

지난 3개월을 돌이켜보면 일본 정부는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핵심 소재를 통제하면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가 타격을 받아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전향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일본 산업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조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 하여금 정치·지리적으로 영향을 가장 덜 받는 신규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촉발시켜서 일본 소재 비중을 낮추는, 즉 구매를 줄이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3세대 10나노급(1z) DDR4 D램.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3세대 10나노급(1z) DDR4 D램. <사진=SK하이닉스>

일본 소재 회사들은 판로를 잃지 않기 위해 우회로를 개척하거나 한국에서 직접 소재를 생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동향은 한두 회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기업의 대 한국 투자를 유치하는 절호의 기회다 싶을 정도다.

반전을 끌어낸 건 무엇보다 우리나라 산업이 그만큼 세계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지 않았다면 외부 공세에 주저앉을지 모를 일이다.

최근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었다. 반도체 장비 세계 업체인 미국 램리서치는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기로 했다. 미래 반도체 시장도 한국이 주도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동안 몸으로 체감하기 어렵던 한국 반도체의 저력이 이젠 크게 느껴진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