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한국 소재·부품산업 경쟁력 확보 가능한가

[ET단상]한국 소재·부품산업 경쟁력 확보 가능한가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나라 소재·부품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 민간 할 것 없이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한국을 수출 허가 포괄 대상에서 제외하고 수출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수출 배제 전격 조치는 우리 소재·부품 산업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한국은 외관상으로 소재·부품 강국이다.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로, 완성품만이 아닌 부품 국제 경쟁력도 매우 높다. 화학제품과 수송기계부품도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 소재·부품 산업의 부가 가치는 제조업 전체의 50%를 넘고, 전 산업 수출에서 소재·부품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50%를 넘는다.

문제는 핵심 소재·부품 영역이다. 반도체용 핵심 소재와 장비는 일본과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절대 의존하고 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소재 국산화율은 50.3% 정도다. 화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규제 조치는 수출 경쟁력이 중요한 우리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짙다.

그렇다면 왜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부품·소재 국산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완성품 중심 성장 전략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우위에 있기 위해서는 부품 국산화보다 완성품 연구개발(R&D)이나 제조 혁신에 초점을 두는 것이 유리했다. 두 번째는 글로벌 가치사슬 안정성에 대한 과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일부 국지전을 빼고 매우 안정됐고, 이런 상황에서 본격화된 글로벌화는 핵심 소재·부품을 안정 상태로 해외 업체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믿음을 줬다. 세 번째는 반도체나 화학 산업에서 한 번 사용하면 바꾸기 어려운 소재·부품의 특성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노하우를 축적한 일본이나 미국 회사들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상당히 근시안이다. 당장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규제는 핵심 소재·부품이 언제든지 국가간 전쟁 무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산업 발전은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안정성·혁신성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나친 단선 형태의 산업 생태계는 탄력성 부족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붕괴된다. 다양성과 혁신성이 없으면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디지털 변혁이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시대를 맞아 핵심 소재·부품 산업의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우선은 대기업들의 국내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와 혁신형 생태계 구축 노력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해 부품·소재를 공동 개발하고, 특허권을 공동 소유·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태계 확장에 중요하다. 개발된 제품이나 기술을 일정 기간 이후 중소기업이 자신의 비즈니스 개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는 테스트베드 구축과 기술 및 제품의 표준화 노력이다. 신제품이나 기술이 나왔을 때 신뢰성 확보와 상용화 테스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많은 투자를 요구한다. 대기업 혼자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수 없다면 정부와 대학이 적극 관여해서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이를 비즈니스 서비스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민간 기업과 연구소, 대학이 참여해 만든 소재·부품·장비 분야 상생협의회가 주도권을 쥐고 각종 제도상의 장애나 협력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국내 소재·부품 산업이 대기업과 혁신 중소기업의 협력을 통해 핵심 분야 경쟁력을 확보하고 소재·부품·장비 강국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yongjkim@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