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직영체제로…반도체 유통시장 격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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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 '유통 대리점' 최소화하고 자사 온라인 거래 플랫폼 집중

SiC 기반 전력반도체 웨이퍼. <사진=SEMI 코리아>
<SiC 기반 전력반도체 웨이퍼. <사진=SEMI 코리아>>

반도체 유통 시장이 오프라인과 대리점 중심에서 '온라인' 및 '직영체제'로 급변하고 있다. 특히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에서 변화 바람이 거세다. 칩 종류와 수요, 집적도 개선 등 반도체 유통·제조 구조가 단순화된 데 따른 것이다.

아날로그 반도체 1위 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지난달 윈텍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애브넷 등 기존 2개사 유통 대리점과 거래를 정리하고 채널을 '애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로 일원화했다. 윈텍과 애브넷을 통해서는 내년 말까지만 TI 칩을 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5일 “TI가 최근 입찰을 통해 애로를 유일한 유통 대리점으로 확정했다”면서 “이 회사도 최소한의 물류 관리를 위해 남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TI 측은 “고객과의 관계 확대를 위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업체 등 소규모 유통업체와 협력한다”면서 “장기 관점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TI가 영업 인원을 우선 충원해 대리점 영업 업무를 보완하고, 자사 온라인 플랫폼을 강화해 직접 판매에 나설 것으로 분석했다. TI는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수년간 준비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재고를 관리하면서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 적극 투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TI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아날로그 디바이스 등도 TI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유통 모델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온라인 구매 페이지. <사진=텍사스 인스트루먼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온라인 구매 페이지. <사진=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그동안 유통 대리점은 중소 고객사에 제품을 팔고 기술을 지원해 왔다.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 제조업체는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시장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소기업을 상대하는 대리점 역할이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칩 회사 매출 대부분이 대기업 고객사에서 나올 만큼 중소기업 물량은 적은 추세”라면서 “온라인 판매로 전환하면 중소업체 불편은 가중되겠지만 TI 같은 칩 회사는 품질을 자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유통 대리점이 사라지는 다른 이유는 칩 집적도가 이전에 비해 월등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시장은 '원칩화'가 대세다. 7㎚ 극자외선(EUV) 공정 등 반도체 초미세 공정이 구현되면서 칩 하나로 여러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대리점별로 여러 칩을 팔아야 하던 과거와 달리 제조사 자체 인력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통 대리점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업계는 대응책 모색에 나섰다. 대리점이 TI 대체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거나 소형 대리점끼리 의기투합하면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유통 대리점 수는 더욱 줄고, 살아남은 대리점은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는 10년 전만 해도 20개 넘는 토종 대리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1~2개만 사업을 영위할 정도로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대기업 OEM 제조사는 자체 칩을 생산하거나 대형 칩 회사와 협력하고, 중소회사는 살아남은 대형 유통 대리점과 설계를 돕는 디자인 하우스에 의지하는 구조로 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