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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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필 전자신문 미래산업부 기자.
<최재필 전자신문 미래산업부 기자.>

“시간을 되돌린 순 없겠죠.” 정부 고위 관계자가 '탈원전'을 두고 한 말이다. 탈원전을 언급하기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17년 10월 24일 '정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방침과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 확정'이라는 제목의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탈원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는 근거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탈원전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 탈원전이 에너지 분야에서 대립 구도를 심화시키는 결정타 역할을 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부더 '탈(脫)원전'이 아니라 '감(感)원전'이라고 했다면 이념 갈등의 골이 이렇게까지 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이른 '원전 사망선고' 탓에 에너지 정책은 진흙탕이 됐다.

'전기요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2017년 7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국회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없을 거란 건 삼척동자도 안다”고 언급, 질타를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성윤모 현 장관도 “2022년까지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없다”고 못박았다. 공교롭게도 2022년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해다.

사상 최악의 한국전력공사 적자가 이어지고 에너지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뚜렷해졌다. 그런데 정부는 너무 일찍 내뱉은 말 때문에 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거세지자 결국 정부는 한전과 전기요금 개편안을 논의하겠다는 수준으로 갈음했다.

자신을 스스로 궁지에 몰아넣었을 때 '자충수를 뒀다'고 한다. 정부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좀 더 신중하게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이행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바람대로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이제는 정부가 선택한 정책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길밖에 없다. 잘못 판단한 게 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