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디지털 세금 전쟁' 불꽃…OECD 회의, 미국 IT·제조기업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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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금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디지털세 합의안 도출까지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대 반미국' 진영 간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하다.

18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는 21~22일 이틀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디지털세를 안건으로 한 회의를 개최한다. 국가별 디지털세 배분 방식인 '이익분할법'이 집중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글로벌 세금전쟁은 미국이 역공에 성공한 모양새다. 디지털세 논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조업 포함 카드를 꺼내면서 반전에 성공했다. 이번 OECD 참석자 명단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회의 참석자 명단에는 미국 대표 정보기술(IT) 회사가 대거 포진됐다.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우버, 넷플릭스, 페이팔 등이 총출동한다. 전체 참가 기업 100여곳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 경영 컨설팅 전문 액센츄어 등도 포함됐다. OECD 디지털세 논의에 단골로 참여해 온 우버를 제외하면 대부분 입장을 처음 밝힌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의 대응은 대체로 소극적이다. 중국 IT 회사 화웨이,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를 빼고 나면 규모 면에서 미국에 맞설 적수가 없다. 우리 기업의 참여도 전무하다. 삼성, LG, SK는 물론 국내 기업은 단 한 곳도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법무법인 양재가 나선다. 디지털세 범위에 제조업을 넣은 데 대한 반대 입장을 전할 예정이다. 우리 국세청과 정부 관계자 5명도 참가자 명단에 들어갔다.

이번 회의의 특징은 제조업체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OECD가 추진해 온 디지털세 과세 대상에 소비재 생산 기업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은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제약, 화장품 등을 생산·판매하는 모든 제조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장품 회사 로레알, 존슨앤존슨을 시작으로 생활용품 브랜드 유니레버, 식품회사 네슬레, 패션 전문 발렌티노 등이 파리 회의장으로 향한다. 석유회사 쉘을 비롯해 의약품 제조기업 바이오젠, GSK 등도 합류한다.

전 세계 법률·회계 전문가들도 한자리에 모인다. 글로벌 1, 2위 로펌 베이커매킨지와 DLA 파이퍼가 참석한다. 이른바 빅4 회계법인으로 불리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딜로이트, KPMG, 언스트앤드영(EY)도 모두 참여해서 의견을 낸다.

이번에 논의될 이익분할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연결재무제표를 통해 다국적 디지털기업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전체 매출을 집계한다. 총액에서 마케팅, 연구개발(R&D), 영업 활동으로 번 '통상 수익'을 뺀다. 나머지 액수는 무형자산을 활용해 올린 '초과 수익'으로 추정한다. 무형자산이 창출하는 수익 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 보니 이처럼 전체 매출에서 통상 수익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구한다. 무형자산은 지식재산권을 의미한다. OECD는 초과 수익을 두고 다국적기업의 해외 자회사, 관계사가 위치한 지역의 국가들이 과세권을 나눠 갖도록 했다. 배분 기준은 지역별 매출 규모다.

합의 결과에 따라 국내 입장에선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다. 소비 시장이 큰 지역일수록 세수 확보에 유리하게 디지털세가 설계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이 제조업 카드를 느닷없이 꺼내든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미국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134개 회원국 만장일치 찬성으로 합의안이 도출돼야 하는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추가 논의 시간도 부족하다. 이익분할법에 이어 최저한세 주제 회의가 다음 달 13일 열린다. 내년 1월 29~30일로 예정된 OECD, G20 회원국 간 협의체(IF) 회의를 끝으로 사실상 공식 일정이 마무리된다.

임재광 법무법인 양재 회계사는 “국제 거래에서 발생한 전체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라면서 “세수 확보에 사력을 다해서 강대국 간 이해관계에 맞서 공평하고 조화로운 이익 배분을 위한 반대 논리가 치열하게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