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환자·의료기관 모두에게 유용한 도구 '의료윤리'

의료 윤리적 측면은 의학 태동 시기부터 주된 관심사였다. 낯익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250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건강을 의사 이익 보다 앞세운다. 환자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취함도 금하는데, 비슷한 내용을 담은 동서양 문서가 즐비하다.

20세기에 의료윤리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떠올랐다. 일본 731부대와 나치의 비윤리적 생체실험은 의학이라는 허울 속에 의사들 손으로 자행됐기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의사들은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며 윤리선언(제네바선언)과 연구윤리지침(헬싱키선언)을 제정했다. 연세의대는 1981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의사윤리 강의 시작했다.

윤도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윤도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의료윤리 지침이 있음에도 의료행위가 적용되는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 발생은 피할 수 없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사회적 논쟁이 발생하며 의료계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가족 요청으로 치료를 중단했던 1998년 보라매병원 사건은 환자가 치료에 관한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없는 경우, 의료진 결정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보라매병원 사건 결과, 다수 의료기관에서 치료과정에서 윤리적 측면 보강을 위한 '병원 윤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에는 의료진, 가족, 윤리와 법률 전문가들이 포함됐으며 중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생명유지장치 사용 관련 사안이 주로 다뤄졌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생명유지 장치를 중단해 선 안 된다는 입장과 삶의 질을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2008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있었던 '김할머니 사건'은 대한민국 의료윤리 문제를 잠정적으로 합의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불의 사고로 회복이 어려운 뇌 손상을 입은 환자를 대신해 가족이 인공호흡기와 집중치료 중단을 요구한 경우다. 가치 있는 삶, 무의미한 치료연장 결정 권한 등 다양한 생명윤리 문제가 얽혀있다.

결국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라면 환자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6년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삶의 마지막 시기에 불필요한 고통만을 안기는 치료가 아닌 삶의 질 향상을 꾀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세의료원은 의료윤리 문제가 여러 학문 사이에 걸친 공통 주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1998년부터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교육과 문제해결에 참여하는 '병원 윤리위원회'를 운영한다. 의료기관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윤리학·법학 전문가, 시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의사결정 기구다. 연명의료 결정, 의료원 정책검토, 의료원 종사자 대상 의료윤리 교육 등을 꾸준하게 시행하고 있다.

의료인은 의학 연구와 실천 과정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보통신기술(ICT)과 의학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문제에는 더더욱 깊은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의료산업화나 신약개발 과정에서 의사-연구자들은 과거 의사들이 경험한 것과 다른 이해 상충을 겪는다. 연구에 참여하는 환자 안전성, 연구 객관성, 진실성이 최우선 가치인 신약연구 과정에서 의사들은 원하는 방향의 연구 결과를 빨리 획득하고 싶은 욕구, 재정적 이익을 실현하고픈 욕망에 빠지기 쉽다. 의료윤리는 윤리적 가치판단 과정을 명확히 하고 이해 상충 관리방안을 제안해 문제해결 실마리를 제공한다.

흔히 의료윤리를 갈등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심한 경우 의료소송과 의료윤리를 혼동하기도 한다. 의료윤리는 윤리적 갈등을 예방하고 환자 이익을 실현해 의료기관이 부여받는 사명을 실현함에 필요한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도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severance@yuhs.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