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벤처정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했으며,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평소의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국내 2위 그룹을 일군 1세대 창업자였다.

만 30세이던 1967년에 대우실업을 창업하고, 수출 중심으로 회사를 빠르게 키우면서 '대우신화'를 써 나갔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열었다.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 기업을 인수해 단기간에 경영 정상화를 이루면서 중화학산업화를 선도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따라 붙는 '세계 경영'은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내건 기치다. 이는 1990년대 '신흥국 출신 최대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1983년에는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받았다. 1989년에 출간한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대우는 1998년 수출액 186억달러를 기록, 한국 총 수출액의 14%를 차지했다.

이런 대우 신화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거치며 급격히 붕괴됐다. 결국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이 해체됐다.

그룹의 몰락과 천문학적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사건은 경영인으로서 그의 명성에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그가 이룬 성과 못지않게 한국 경제가 떠안아야 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전성기를 함께한 경영인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다.

벤처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2019년 마지막 달, 전 세계를 누비던 김 회장의 창조적 도전정신을 이 시대의 기업인들이 이어 가길 기대한다. 물론 그의 허물 또한 뼛속 깊이 아픈 교훈으로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