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프로크루스테스

[기고]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프로크루스테스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이 되기 위한 여정길에 여러 괴물을 물리치게 된다. 그 괴물 가운데 하나가 프로크루스테스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손님을 침대에 누인 후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사지를 늘이는 방식으로 손님을 살해했다. 타인을 자신이 정한 기준에 무조건 맞추도록 강요한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접근은 과거 영국의 전성기이던 대영제국 시절에도 반복됐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가 영국에 처음 도입됐을 때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마부 협회의 강렬한 저항을 받았고, 그 결과 자동차 운행을 제한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자동차는 시내에서 시속 3㎞로 운행해야 하며, 자동차 운행을 위해 운전수·기관원 외에 붉은 깃발을 가지고 차량의 55m 전방을 걷는 기수가 다른 마차나 보행자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예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나 영국의 '붉은 깃발 법'(적기조례)과 얼마나 다른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이자 중진국 덫을 벗어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를 넘어선 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선진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블록체인이나 디지털 플랫폼, 긱 경제 등 신기술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의 향후 성장 전망을 비관하는 해외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다. 최근 정부가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무엇보다 소비자 후생 증진이 정책 수립의 우선 순위여야 한다. 새로운 기술로 수혜를 보는 집단이 불특정 다수이거나 아직 형성되지 않은 소비자 잠재 집단이라면 이들의 목소리가 규제 합의 시스템에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 영국의 '붉은 깃발 법'처럼 마부 같은 기존 이해관계자 입장만 고려되는 것이다.

둘째 수평 규제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이기 때문에 많은 산업 관련 법과 제도는 제조업에 최적화돼 있다.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기술들은 디지털 플랫폼 기술이며, 더욱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이 되고 있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기존의 법·제도를 준용해서 적용하는 것은 지극히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사고 방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의론'에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평등이라고 했다. 산업별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혜택이 아니고 평등한 대우다.

셋째 앞으로 당면하게 될 신기술과 제도 간 갈등은 과거와 달리 개별 부처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수많은 직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고 자율주행 기술이 자동차 보험체계를 뒤흔들 수 있는 것처럼 기술은 산업뿐만 아니라 노동, 금융, 문화, 윤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항을 미치는 사회 핵심 요소가 됐다.

이에 따라 개별 부처의 제도 개선 노력만으로는 새로운 기술로 유발되는 사회 현안이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 실제 신기술 기업들을 만나면 하나의 이슈 해결을 위해 너무 많은 개별 부처를 설득해야 함을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꼽는다.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범 부처 차원의 노력과 실효성 있는 일원화 창구가 시급하다.

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 경쟁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다. 업계 간 판도가 쉴 새 없이 뒤바뀐다. 1등 기업조차 시장 선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다. '중진국의 덫'을 벗어난 우리나라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덫'에 빠질 수는 없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나 '붉은 깃발 법' 같은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추진해야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강자로 거듭날 수 있다.

안준모 서강대 교수 ahn.joonm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