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 밴(VAN), 혁신 플랫폼 vs 대형가맹점 특혜 '공방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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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밴' 확대를 놓고 카드사와 밴(VAN)사 간 갈등이 터졌다. 밴업계는 결제 시스템 전환을 두고 법정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6일 정보통신(IT)·카드업계에 따르면 다운사이징 밴 도입을 둘러싸고 양 업계 간 갈등이 확산일로를 치닫고 있다. 밴업계는 대형가맹점 지원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카드업계는 법적 문제가 없고 오히려 가맹점 수수료를 낮춰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다운사이징 밴은 기존 밴 시스템을 대폭 슬림화한 시스템이다. 밴사는 현재 카드사를 대행해 가맹점 대상으로 승인중계, 매입, 종이전표 수거 등 결제 프로세싱 관련 업무를 대신 처리한다. 반면에 다운사이징 밴은 승인중계 핵심 기능만 따로 떼어내 구축한 것으로,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카드사는 밴 수수료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양 업계 간 힘겨루기는 3년 전부터 잠복해 있었다. 2016년 9월 삼성카드가 홈플러스에 처음 도입했다. 삼성카드는 지분 14.46%를 보유한 코세스라는 밴사를 통해 국내 첫 다운사이징 밴을 홈플러스에 구축했다. 이를 시작으로 삼성카드 등 일부 카드사가 대형 가맹점 대상으로 올해 다운사이징 밴 전면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카드업계는 다운사이징 밴이 도입되면 일반가맹점에 적용하는 밴 수수료와 별도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맹점에는 낮은 밴 수수료를 적용하고, 그만큼 절감된 밴 수수료는 중소형 가맹점 수수료를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이미 금융 당국에서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면서 “무서명 거래 등 디지털 결제가 많아지는데 덩치 큰 종전의 밴 결제 대행 시스템을 많은 돈을 지불하고 이용할 필요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밴사는 높은 밴 수수료 대행료를 받아 과거 상당한 리베이트를 대형가맹점에 줬으면서 이제 와서 카드사 대상으로 우회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밴업계는 “다운사이징 밴은 별도 시스템을 운영·관리하기 위한 인력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종전 시스템보다 서비스 원가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 시스템 도입을 강제하는 진짜 이유는 엄청난 결제 건수가 나는 대형가맹점에 부당한 보상금을 지원, 가맹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고 맞섰다.

기술적인 시스템 보안 수준을 놓고도 주장이 엇갈렸다.

카드업계는 홈플러스 등 이미 도입된 다운사이징 밴 시스템에 해킹 등 보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슬림한 전산 체계로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밴업계는 이중 결제나 이상징후시스템(FDS) 등 여러 보안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시키지 못한 반쪽 시스템이어서 대형 보안사고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지급결제 시스템은 높은 수준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만큼 다운사이징 밴 전산에 대한 세부적인 보안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도 문제 삼았다.

이 같은 갈등에 금융 당국이 불을 지폈다. 금융위원회는 삼성카드와 홈플러스 시스템 도입 이후 논란이 일자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후 갑자기 모호한 내용의 유권 해석을 내렸다. 사실상 카드사가 주장하는 내용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다만 책임은 민간이 져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한 유권 해석으로 카드업계와 밴업계는 자의적으로 금융당국 결론을 해석하며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