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계획형 혁신' 벗어나야 민간투자 활성화"

혁신 정책, 기존 패러다임에 머물러
지나치게 국내 시장에 집중 문제점
정부-민간 역할 명화하게 분리
국제표준 준용하며 규제완화 필요

혁신·벤처기업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신산업을 둘러싼 각종 규제를 해소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 법과 제도의 틀로는 타다 등 스마트 모빌리티, 원력 의료 분야 등 신산업 분야에서의 새로운 시도가 좌초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문제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단순히 규제 혁신 과제를 입법하는 것을 넘어 정부의 사전 규제 관행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다. 민간 자본의 모험자본시장 유입과 활성화 역시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분리한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22일 국회에서 '경제 활력과 혁신·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가 열렸다. 행사는 김경만·김병욱 의원 주최, 전자신문·벤처기업협회 주관으로 마련됐다. 좌장을 맡은 임채운 서강대 교수는 “규제 완화와 민간투자 활성화는 결국 맞물리는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규제 완화가 우선되어야 결국 민간 벤처투자도 활성화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와 국회의 대대적인 규제혁신과 이를 통한 민간 영역의 투자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규제개선 우선돼야 혁신정책 패러다임 잡힌다

이날 토론회 핵심은 무엇보다 혁신·벤처기업 규제개혁에 방점이 찍혔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의 '혁신시장 열어 혁신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규제혁신 방안' 발제에 이어 곽노성 한양대 교수,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장,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 김달원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 등이 신산업 규제 혁신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경제활력과 혁신·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가 멈춰선 대한민국, 혁신·벤처가 답이다를 주제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노성 한양대 교수,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대표, 김달원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이용선 의원,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유효상 숭실대 교수,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부소장, 김승규 전자신문사 벤처유통부장,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혁신정책관, 김진형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채운 서강대 교수,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김경만 의원, 변재일 의원.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경제활력과 혁신·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가 멈춰선 대한민국, 혁신·벤처가 답이다를 주제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노성 한양대 교수,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대표, 김달원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이용선 의원,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유효상 숭실대 교수,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부소장, 김승규 전자신문사 벤처유통부장,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혁신정책관, 김진형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채운 서강대 교수,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김경만 의원, 변재일 의원.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곽 교수는 갈라파고스식 사고에서 벗어나 혁신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규제 혁신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최근 연이어 추진하고 있는 혁신정책의 문제점을 정부 주도의 계획형 혁신에서 찾았다. 구 변호사가 발제에서 지적한 대로 앞서 정부가 추진한 수많은 진흥법 체계가 여전히 과거 개발시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혁신의 성패가 민간의 창의와 도전이 아닌 정부와 얼마나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지, 보고서를 얼마나 잘 쓰는지로 결정되면서 혁신 생태계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진흥법이 더 이상 산업진흥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그간 시행한 진흥법 가운데 몇 개만 성공했어도 지금처럼 상황이 어려워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혁신 정책이 지나치게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안팎에도 불과한데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국내 시장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력이 시장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시장의 경우 정부의 규제 설계와 시행 능력 부족이 더 큰 어려움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우리만의 규제를 복잡하게 설계하기보다는 국제 표준이 되는 유럽 등의 규제를 준용하되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만 완화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차두원 소장은 규제와 관련한 정부의 거버넌스 체계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특히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의 경우 지나치게 많은 부처가 관여하면서 오히려 논의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차 소장은 “향후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부처 간 신속한 협력과 기업들과 정확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창구 혹은 채널의 단순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신산업과 기존 산업 간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환경 조성자의 역할도 정부에 주문했다. 차 소장은 “신산업 허용과 함께 기존 산업의 규제도 함께 풀어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 역할도 강조된다.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21대 국회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규제혁신”이라면서 “비대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 과제와 제조업 등 주력산업 피해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규제혁신 입법이 신속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특히 △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반산업 구축을 위한 법안 재추진 △중소제조업의 비대면 생산·효율성 향상을 위한 스마트공장 법제화 △20대 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된 비대면 진료, 원격교육, 비대면 배송·플랫폼 등 비대면 산업 진입 및 서비스 규제혁신 등 비대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우선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리쇼어링 활성화, 일괄담보제 도입 등 주력사업 정상화를 위한 정책 추진 역시 21대 국회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로 꼽았다.

◇CVC 도입 넘어 민간투자 생태계 자생력 확보해야

민간자본의 벤처투자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논의됐다. 일반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경우 금융회사로 취급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김병욱 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국회에 올라가 있는 만큼 CVC 도입에 따른 효과와 함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보완 방안 등이 중점 논의됐다.

김병욱 의원은 “벤처 생태계가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대기업 또는 성공한 벤처기업이 후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시대와 국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활용할 수 있도록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CVC 도입에 힘을 실었다.

유효상 숭실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대기업 등의 벤처투자 실적이 저조한 이유를 반드시 CVC만의 문제로 단정할 수 없다면서 “유니콘보다는 엑싯콘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고 비즈니스 엔젤 양성과 투자 회수 시장 활성화를 통해 대기업의 자금이 민간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금산분리 원칙 훼손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언도 이어졌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지주회사에 CVC 보유가 허용되더라도 계열사에 대한 부당 지원이나 우회투자 등 편법적인 운용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박 연구위원은 “편법적인 운용 가능성은 투자 현황, 자금대차 관계, 특수 관계인 거래 등에 대한 공정위 보고 의무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면서 “자회사 벤처캐피털(VC)의 경우 법적 형태에 따른 소관부처의 관리 감독도 받게될 뿐만 아니라 펀드 운용의 경우에도 출자자에 대한 별도 통제가 있어 견제와 감독이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헌 중기연 원장은 벤처투자 시장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외국은 CVC 역시도 특정 형태로 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부분을 규제하는 방식”이라면서 “이제는 선진적 모험자본시장으로 구조 개편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민간과 국가 간의 역할 분리를 시작하고 앞으로는 정부가 서서히 민간 시장에서 손을 땐다는 생각으로 CVC와 벤처투자 시장에 대한 접근도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