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극의 해, '레미제라블'을 무대에 올리다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2020년 ‘연극의 해’를 맞이하여 대작 ‘레미제라블’이 관객들을 찾아왔다.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은 영화와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탈바꿈하여 무궁무진한 변신을 보여주었다. 2020년의 연극 레미제라블은 또 다른 해석을 가미한 공연으로 한층 더 발전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숙련된 기술이 돋보이는 거장 배우들과 새롭게 연극 무대에 서게 된 배우들까지 세대의 다양성이 공존하고 있는 레미제라블은 그야말로 볼거리가 가득했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함께 공개된 연극 레미제라블은 이달 7일 오후, 예술의 전당 CJ 토월 극장에서 초청 시연회를 선보였다. 장엄하고 웅장한 외관과 공연장 내부를 뽐내는 예술의 전당은 ‘레미제라블’에 제격인 배경이었다. 취재 열기로 활기찬 예술의 전당은 연극계에 한 줄기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분야는 역시 많은 관객들의 관심이 필요한 공연계였다. 특히나 소극장들은 공연의 지속이 당장 어려워질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연극의 해라는 타이틀과 모순된 상황에 가슴 설레는 공연이 목말라지던 찰나 레미제라블은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지 않았나 한다.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큰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어떤 시대에 대입해도 통용되는 가치관과 교훈을 내포하고 있어 언제나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 ‘레미제라블’이 몇 번을 보아도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색다른 해석과 진심이 담긴 연기, 고조되는 감정에 저절로 호기심이 동했다. 희로애락이 전부 담겨있는 스토리는 관객들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고, 여러 개의 조명을 이용한 극적인 연출은 그 감정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앙상블도 귀를 사로잡았다.

1부는 빵을 훔치는 장발장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사소하고도 거대한 행동이 대서사시의 발단이 된다. 예술 감독인 동시에 주인공인 장발장 역할을 맡은 윤여성 배우는 카리스마가 담긴 표정과 말투, 연기로 장발장의 심경 변화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드라마틱 한 장발장의 인생은 확실히 고난도의 연기를 요했지만, 훌륭한 감정 연기로 그의 긴 역사를 무리 없이 보여주었다. 장발장 삶의 2막인 ‘마들렌 시장’의 품위와 정직함, 그리고 인생에 대한 탐구와 성찰로 가는 과정까지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연극을 섭렵한 연극 마니아라면 존경스러워할 만한 대배우들도 베테랑다운 연기력을 불태웠다. 질르노르망 역의 오현경 배우는 자신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는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극 중에서는 그런 고민을 드러내지 않고 완벽한 연기로 승화시켰다. 미리엘 주교 역의 박웅 배우는 목소리부터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관객들의 몰입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특별출연의 최종원 배우는 잠깐 등장하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다른 배우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장발장을 마치 숙명처럼 쫓는 쟈베르의 고뇌를 심도 있게 풀어낸 하성민 배우는 극에 긴장감을 더했다. 떼나르디에 부부를 연기한 이호성과 진태연 배우는 재치 있는 제스처와 대사로, 서민의 고충과 돈에 대한 탐욕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마리우스 역할의 강호석 배우는 실감 나는 연기력으로 코제트에 대한 사랑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이번에 ‘코제트’ 역으로 연극의 스타트를 밟은 함은정 배우는 익히 알려진 배역 소화력과 안정적인 노래 실력으로 앞으로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사랑’의 행복함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나타낸 팡틴 역의 이소영 배우와 에포닌 역의 반소영 배우, 시민 군 역할을 맡은 배우들까지 모두가 레미제라블의 화려한 그림을 완성 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아역 배우들 또한 풋풋한 모습과 함께 프로다운 면모도 동시에 보여주어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가브로슈’ 역의 김주안 배우가 눈에 띄었는데, 정확한 대사 전달력과 눈물이 찔끔 나오게 만드는 집중력까지 가지고 있어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 굉장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함께하는 장이니 만큼 연기력은 나이에 상관없이 열정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했다.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반대로 절대 평범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과 응원을 준다. 소박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창대한 작품이며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뜨거운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연극이다. 이는 연출에서도 돋보였는데, 커다란 벽과 소품의 과감한 이동으로 큰 무대를 꽉 채우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탄생시켜 관객을 압도했다.

레미제라블은 눈물 나게 비극적인 슬픔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맞게 여러 가지 고난과 다채로운 사연을 보여준다. 동시에 시민 군의 이야기도 담고 있어, 우리가 진정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까지 남겨둔다. 그리고 이 연극은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며 다소 거대한 메시지로  전체를 요약한다. 하지만 연극을 다 보고 나면 그 메시지가 가슴속 깊이 와닿게 될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속에서 남는 기억은 결국 사랑이며 서로 사랑했던 나날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랑보다 의미 있는 것은 없다. 장발장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코로나19의 감염과 혼란으로 각종 차별과 혐오가 더욱 심화된 세상 속에서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레미제라블' 초청 시연회 장면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은 관객과 정말 가까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이다. 공연의 관람이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워지는 시기이지만 연극만의 극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경험하기 위해 예술의 전당으로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으로 모든 걸 이겨내는 힘을 느끼고 싶다면 연극 레미제라블을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2020년 연극의 해를 맞아 무대에 올려진 '레미제라블'이 가지는 크고 넓고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는 오는 16일까지이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장세민 객원기자 (k-cultur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