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미리 가 본 미래]〈28〉미래 신산업 성패는 공간에 달려 있다

[박정호의 미리 가 본 미래]〈28〉미래 신산업 성패는 공간에 달려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물리적 거리로 인한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그래도 풀리지 않은 현상이 있는 데, 거리(distance) 제약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혁신을 위해 더더욱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혁신 활동이 특정 지역에 집중해 발생하는 현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속하고 있는 기술발전과 극심한 경쟁 환경에서 밀집된 장소는 아이디어 및 지식 교류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과거 혁신 공간은 저밀도 교외형 과학단지(science parks) 형태였다. 전원적 풍경과 조용한 연구환경이 조성된 연구단지나 캠퍼스 인근을 떠올리면 이해될 것이다. 연구자가 한적한 공간에서 중장기적인 어젠다를 설정하고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설비를 비치할 수 있는 공간은 교외 지역이 적합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밀도의 도시형 혁신공간(innovation district)이 부상하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은 독립된 캠퍼스보다 도시의 역동적 분위기와 환경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 환경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 핵심 기술만 확보해도 사업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이종 분야의 융합 속에서 사업이 수행되다 보니 여타 회사와 협업이 사업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또한 도시형 공간은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액셀러레이터 등과 연계가 용이하다는 장점 또한 내포하고 있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혁신의 메카는 이러한 범주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시애틀의 경우는 아마존, MS 등 핵심 앵커기관 중심의 도시형 혁신공간(anchor-plus innovation district)에 해당한다. 도시에 위치한 앵커기관을 중심으로 혁신 활동을 사업화하기 위해 관련 기업과 스타트업이 집적한 공간이다.

또 다른 형태로 재구성된 도시 지역(re-imagined urban areas) 유형은 도시에 오랫동안 버려진 산업부지나 물류창고 등 낙후된 공간을 물리적·경제적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혁신 공간으로 만든 사례다. 대표 사례는 베를린이다. 베를린은 동베를린 거주자가 통일 이후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많은 사무실과 거주 공간이 빈 상태가 됐다. 이러한 빈 곳을 베를린 공대 창업가와 문화예술 종사자 자신만의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베를린은 유럽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공간으로 거듭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과거에 형성된 교외 지역의 과학연구단지(urbanized science park)가 도시화되는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교외 지역에 학교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캠퍼스 형태의 과학연구단지가 혁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상업 시설 등을 포함한 도시화 돼가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교외 지역에 위치한 명문대 주변이 점차 도시화 되는 추세가 해당된다.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디지털 기술 대중화는 인구 분산을 가능하게 해 특정 지역의 인구밀도를 낮출 것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은 인구를 분산시키기보다 도시로 집적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빠른 혁신과 많은 혁신을 유도하고 있다. 지금 미래 산업 분야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기업이나 기관이 있다면 첫 단추는 어느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