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복제되는 기술, 복제되지 않는 저커버그

`모든 것은 변한다`는 단순 명제가 지금처럼 명징하게 드러나는 때가 있었을까? 지난 몇 년 동안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되는 IT 혁신은 단지 기술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변화까지 추동해 내고 있다.

[콘텐츠칼럼]복제되는 기술, 복제되지 않는 저커버그

이러한 변화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콘텐츠 분야 변화다. 책에도 콘텐츠가 있고, 웹에도 콘텐츠가 있는데 무슨 변화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변화에선 콘텐츠 성격은 물론 이를 소비하는 인간 자체의 변화도 감지된다.

콘텐츠 변화는 두 가지 지점에서 발생한다.

첫째, `모바일`. 콘텐츠 소비가 이동 중에 발생하며, 이동 중의 한 지점과 연관된 콘텐츠가 중요해진다. 10여년전 인터넷 혁명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익명적 존재`의 `실시간 네트워킹`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지금의 모바일 혁명은 `현실 공간`에서 `실제 인물`의 `단절 없는 시공간 네트워킹`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커뮤니티의 익명적 존재에서 페이스북 실제 친구관계로의 복귀는 이런 모바일 네트워킹 현상의 방증이다.

둘째, 인터페이스 변화로 인한 콘텐츠와 인간의 변화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가장 놀라운 변화는 콘텐츠를 만진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콘텐츠를 보았다. 시각으로 텍스트를 읽고, 이미지와 동영상을 보았다. 학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더니즘으로 불리는 20세기까지의 문화는 `시각` 중심 문화였고, 볼 수 있다는 것은 인식할 수 있었으며 주체와 객체를 분리할 수 있는 준거점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이후 우리는 콘텐츠를 만진다. 시각중심주의에 `촉각`이라는 다른 감각을 선사했다.

이제 콘텐츠는 인간에게 시각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인간의 행위에 반응하는 콘텐츠로 변화해가고 있다. 애플의 전자책 샘플을 보며 환호했던 것은 그 콘텐츠가 중층적으로 구성돼 손 끝 움직임에 따라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사물간 커뮤니케이션이 거론되듯, 사람과 콘텐츠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주목해야 하는 환경이 됐다.

콘텐츠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의 소비자 즉, 인간이 변화하면서 지금의 혁명은 정점을 찍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이제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자아와 타자를 분리하고, 자아의 생각에 의해 타자를 분석하고 지배하는 것이 모더니즘의 핵심 기제였다.

촉감 등 다양한 감각의 개입은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내가 그것을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물이 `연동`하게 되고, 인간의 감각은 터미널 기기에 의해 확장된다. 기계가 인간의 일부가 되고, 거꾸로 인간이 기계의 일부가 되는 상태. SF 공상영화에나 나올 듯한 `사이보그`라는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콘텐츠와 인터페이스, 그리고 인간의 변화라는 엄청난 흐름이 작은 스마트폰으로 촉발되고, 그 시작이 해외에서 갑자기 몰려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적잖이 당황해 하고 있다. UX라는 단어에 허둥대고, IT와 인문학이 만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은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성공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청년에게 스타트업으로 성공하라며 지원해 주고 있다.

잡스의 사업적 천재성은 많이 회자되지만 그의 문화적 토양인 1960년대 미국 히피 문화나 해킹 그룹의 전설적 무용담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저커버그의 엄청난 성장에 모두들 감탄하지만 그들이 장난처럼 벌였던 해커톤의 열기와 경쟁이 페이스북의 놀이문화이자 동력이었던 것은 알지 못한다.

청년들에게 스타트업으로 부자가 되라고 말할 때가 아니다. 그들은 놀아야 한다.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해보고, 간단한 앱을 만들어보고, 실패하고, 작은 성공을 맛보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한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무의미해보이고, 쓸데없는 장난 같아 보이는 것일 지라도 용인할 수 있는 기성세대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지금의 이 커다란 비즈니스를 가져 온 것은 그보다 훨씬 거대한 문화적 경험들이었기 때문이다.

조희제 비트도트 대표 ouyaa@bitd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