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정권에 징발되는 전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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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현대 사회는 전문가의 능력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 전문가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사회에 필요한 과학기술·사회문화·의료·예술 등 여러 영역의 기술과 지식 그리고 담론을 생산한다.

[과학산책]정권에 징발되는 전문성

교수·연구자·법조인·의사와 같은 전문가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소득을 누리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그들의 전문성에 대해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이러한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에 `공공성의 가정`이 전제된다는 점이다. 즉, 전문성이 특정한 집단이나 계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전문가 집단을 대표하는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는 박근혜정부의 이른바 창조경제에 코드를 맞추느라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새로 권력을 잡은 정권이 선거과정에서 급조한 공약이나 설익은 정책기조의 내용 채우기를 출연연에 떠맡기는 행태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 MB정부에서도 녹색성장이라는 앞뒤가 맞지도 않는 구호를 내세워 `꿩 대신 닭`으로, 원래 하고 싶었던 대운하 대신 4대 강을 온통 헤집어 놓는 과정에서 똑같이 되풀이됐다.

수많은 박사급 연구원이 마치 초등학교에서 힘센 아이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공부 잘하는 힘없는 아이처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허울뿐인 4대 강 관련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 결과는 이번 장마와 홍수에 떠내려간 수중보가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사업에 쏟아부은 천문학적 예산은 모두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그 혜택을 누린 집단은 건설사들과 그 주변 이익단체뿐이다. 정권이 바뀌자 4대 강 사업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지만 책임질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뽑은 정부가 내세운 공약을 출연연이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을 잡기 위해 좋은 낱말을 이리저리 그러모아 만들어낸 구호성 공약을 그럴듯하게 정당화하고 정권의 비위에 맞는 정책들을 쏟아내는 데 나라의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있는 출연연이 총동원되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볼 수 없다.

출연연뿐 아니라 대학 연구자도 공공 연구비를 얻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창조경제라는 말을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한 나라의 전문성이 타의든 자의든 온통 정권에 징발되는 슬픈 현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성이 징발되고 전문가들이 그러한 과정에 순응하는 과정이 구조화되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이래 과학이 경제발전의 도구로 동원되어온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과학의 국가주의가 강한 과학기술 분야는 특히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징발과 순응의 구조화는 전문가 사이에서 보신과 출세주의를 당연한 `대세`로 여기게 한다. 그 대가로 정부는 말 잘듣는 전문가에게 일정한 보상을 해준다.

일부 출연연 간부의 공금 유용과 비리 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다. 이 과정에는 과학기술자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과총)과 같은 과학기술자 단체들이 과도하게 정치화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러브콜을 해대느라 바쁜 것도 한 원인이다.

얼마전 이른바 연예병사들의 특혜와 비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언론은 군 간부들이 집안행사에 연예병사를 동원하고, 그 대가로 군기문란 행위를 방조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인인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병사 전체가 아니라 소수 고위층을 위해 썼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어느 나라든 공익적 전문성이 저절로 세워진 사례는 없다. 숱한 비판과 감시,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들 자신의 성찰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정권의 사병으로 전락해서 창조경제 소동에 성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이 기회에 정권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들의 전문성을 팔아 실익도 없는 정책들을 남발한다면 사회가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지워준 책무를 방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김동광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교수 kwahak@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