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3-창조, 기업에서 배운다]고수익의 대명사에서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닌텐도

올해 4월 24일 닌텐도는 영업적자 364억엔(약 3964억원)이라는 초리한 2012년 실적을 발표했다. 2011년에도 373억엔(약 4062억원) 적자를 냈으니 2년 동안 8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올해 1000억엔의 흑자를 내겠다”고 선언했지만 일본 언론의 평가는 차가웠다. 혹시 흑자전환에 성공하더라도 딱 3년 전 닌텐도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목표다.

[창간 31주년 특집3-창조, 기업에서 배운다]고수익의 대명사에서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닌텐도

슈퍼마리오를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개발본부장은 세계 게임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지만 스마트폰이라는 도도한 변화의 흐름을 타지는 못했다.
슈퍼마리오를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개발본부장은 세계 게임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지만 스마트폰이라는 도도한 변화의 흐름을 타지는 못했다.

닌텐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수익 기업이었다. 2009년 매출 1조4400억엔(약 15조6800억원)에 영업이익 5300억엔(약 5조7700억원)이라는 경이적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률은 38%에 육박했다. 닌텐도가 게임뿐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파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이적 수치다.

직원 1인당 매출은 10억엔에 육박, 도요타의 5배를 넘었다. 시가총액은 부동의 1위 NTT도코모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커졌다. 연이은 천문학적 이익으로 예금에만 당시 환율로 11조원 이상을 쌓아뒀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지만 닌텐도의 추락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점을 찍은 이듬해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실적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세계 초일류 기업에서 순식간에 적자 회사로 전락한 원인이 무엇일까.

◇날개 없는 추락의 원인은 폐쇄성=닌텐도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폐쇄성`이다. 세상은 스마트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개방으로 나아가는데 닌텐도는 전용 게임기라는 프레임을 고집했다. 스마트폰에서도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는 휴대형 게임기를 외면했다.

외면의 이유는 간단하다. 터치 몇 번이면 스마트폰에 공짜 게임이 설치되는데 굳이 닌텐도DS 구매에 20만원이 넘는 돈을 내기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지만 대개 매장까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점도 번거롭다.

닌텐도는 과거 폐쇄성으로 재미를 봤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양분하던 게임기 시장에서 슈퍼마리오를 앞세워 일약 삼국지 구도를 만들었다. 닌텐도는 특히 게임 개발사에 전폭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저가 전략으로 게임기가 날개 돋힌 듯 팔렸기 때문에 재미만 있으면 게임도 흥행 보증수표를 받는 셈이다. 닌텐도는 개발사에 수만 장의 최소 발매 수량 약속을 받았다. 그만큼 자사 게임기에 자긍심이 있었지만 개발사 입장에선 가혹한 조치였다.

전자신문은 2009년 2월 게임 업계 살아있는 전설인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개발본부장을 인터뷰했다. “애플이 닌텐도의 경쟁자라는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야모토 본부장은 “애플이 훌륭한 회사지만 슈퍼마리오는 없지 않느냐”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게임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미야모토 본부장의 자신감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퇴색해갔다.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마켓이라는 장터가 세워졌다. 개발사는 굳이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 않아도 게임을 세계인에게 팔 수 있는 기회에 주목했다. 재미있는 게임이 무료로, 유료라 해도 단돈 몇 달러에 나오자 게임 팬들은 닌텐도DS를 놓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사족이지만 닌텐도의 방만함도 한몫했다. 지난 2011년 8월 초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한 통의 메일을 닌텐도 임직원에게 보냈다. 그는 메일에서 “지난 10년 동안 닌텐도에는 거품이 잔뜩 끼었다”며 “그에 취해 돈을 아무렇게나 쓰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닌텐도에 갑자기 비용 절감이라는 찬바람이 불었다. 그해 닌텐도의 여름 보너스는 당시 환율로 2200만원을 웃돌았다. 니혼게이자이 조사에서 3년 연속 선두를 지켰다. 한 미디로 닌텐도는 지금까지 비용 절감과는 무관한 회사였다.

◇세상은 개방을 원한다=7월 15일은 세계 게임사에 중요한 날이다. 1983년 이날 닌텐도가 세계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패미콤`을 출시했다. 올해로 30주년이다. 화투를 팔던 닌텐도가 세계 게임 업계를 좌우하는 거물로 다시 태어난 계기다.

이후 세계 게임 업계는 게임기가 이끌어갔다. 소니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가 뛰어들면서 `게임=콘솔`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을 중심으로 온라인게임이 등장했다. 아이템 판매라는 독특한 비즈니스모델을 들고 나온 온라인게임은 게임기 시장을 강타했다. 별도의 게임기가 없어도 집집마다 있는 PC에서 즐길 수 있고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매력이 어필했다. 여기에 2008년 아이폰 등장 이후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나면서 게임기 시장은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닌텐도는 여전히 게임 콘텐츠로 역전을 꿈꾼다. 휴대형 게임기 신제품 가격을 내리고 `슈퍼마리오` 등 인기 게임 시리즈를 계속 투입하는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닌텐도는 이전에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신제품에 밀려 고전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으로 1억4000만대 이상 팔린 닌텐도DS도 출시 초기엔 부진했지만 `두뇌 트레이닝` 게임으로 단번에 만회했다.

고비를 잘 넘겨왔지만 닌텐도가 처한 현실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게임기가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가는 시기다. 스마트폰이 휴대형 게임기 자리를 대신하고, 유통은 인터넷이 오프라인 상점을 대산한다. 마니아의 전유물이던 게임을 더 많은 사람이, 더 부담 없이 즐기는 콘텐츠로 바꾼 혁신의 주인공이 닌텐도지만 스마트폰 혁명 과정에선 구태의연했다.

스마트폰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가 소비자 선택을 기다린다. 잠깐 한눈을 팔거나 의사결정이 조금만 늦어도 혁신 대열에서 멀어진다. 닌텐도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스마트 혁명 시대 개방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가정용 게임기 주요 연혁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