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망프로젝트]잊혀질 권리

올해 중학생이 된 A군은 개명을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어렸을 때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에 올린 댓글 때문입니다. A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반감으로 인터넷에 무조건적인 악성 댓글과 폭력적인 게시글 등을 작성한 전례가 있습니다. 지금은 반성하고 다른 사람이 되었지요. 하지만 여전히 A군의 이름을 인터넷에 치면 그가 남긴 말들이 고스란히 검색됩니다. 평생 남는다면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큰 짐이 될까요. 하지만 인터넷에는 본인이 올린 게시글조차도 `삭제`할 권리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희망프로젝트]잊혀질 권리

하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개인이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 있는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잊혀질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관련 법령으로 제정 움직임이 있을 정도인데요. 인터넷 검색으로 볼 수 있는 개인 신상정보, 사망한 뒤 페이스북에 남아 있는 사적인 사진 등의 정보는 개인 것이지만 정보 삭제 권한은 기업에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고 하니 한번 알아볼까요.

Q. 잊혀질 권리란 무엇인가요?

A. 앞서 언급했듯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란 인터넷에서 생성·저장·유통되는 개인 사진이나 거래 정보 또는 개인의 성향과 관련된 정보 소유권을 강화하고 이에 대해 유통기한을 정하거나 이를 삭제, 수정, 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 개념을 말합니다. 이런 잊혀질 권리 개념은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무엇보다 인터넷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대다수 이용자가 정보를 소비하는 동시에 생산하는 능동적인 프로슈머가 되고 있는 데 기인하고 있습니다. 즉 온라인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자신의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게시하는 등 이용자들과 지식·정보를 공유하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는 가운데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상황입니다.

Q. 유럽이나 미국에서 움직임은 어떤가요.

A. 유럽연합(EU)은 지난 2012년 1월 25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인터넷에서 정보 주체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잊혀질 권리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보보호법(data protection) 개정안을 확정했습니다. 1995년 정보보호 방침을 제정한 이후 16년 만으로, 세계적으로 잊혀질 권리가 입법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EU 집행위는 이번 개정안을 개인 및 법인을 포함한 EU 전체 회원국에 직접 적용시키는 최고 수준의 규범인 `규정(regulation)` 수준으로 격상해 법적 구속력을 강화했다고 합니다. 기존 법규는 권고 수준의 구속력을 갖는 `지침(directive)`이었죠. 이 개정안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27개 회원국의 정부 대표로 구성된 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EU 집행위는 2014년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잊힐 권리가 인정될 경우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 인터넷 업체들은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커 이를 반대하는 분위기입니다.

Q. 관련 기술도 개발됐다고 하던데요.

A. 최근 디지털 소멸 시스템(Digital Aging System)이 개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특허는 디지털 데이터 내에 인간 유전자 `텔로메어`처럼 일종의 `에이징 타이머`를 장착하는 방식입니다. 즉, 사용자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릴 때 사전에 타이머로 에이징 시점을 정해 놓으면, 해당 데이터 만료기한에 데이터가 시한폭탄처럼 소멸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각종 인터넷 및 SNS 상에 떠도는 사진, 동영상, 게시글, 댓글, 리트윗 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검색을 통해 세상 곳곳으로 재전파되고, 영구불멸의 상태로 존재하는 폐단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