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인과관계 규명없는 중독 밀어붙이기

게임을 마약과 동일한 수준으로 규정하는 4대 중독법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독에 대한 약간의 기초상식만 있어도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콘텐츠칼럼]인과관계 규명없는 중독 밀어붙이기

물질중독인지 행동중독인지의 구분을 넘어서 중독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폐해를 초래하는 행동을 조절하려 하지만 통제력을 잃고 반복하는 행동`으로 정의된다. 술, 담배, 마약, 도박, 섭식(음식), 성, 쇼핑, 운동 등이 대표적인 물질과 행동 유형이다. 대체로 이런 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중독자 본인이 고통을 느끼고 벗어나고자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기 때문에 주변사람과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심지어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자조모임을 만들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못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중독법이 게임을 마약과 도박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은 심각한 비약이다. 중독의 피해당사자 측면에서, 게임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이를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럽다는 게이머를 나는 본 일이 없다. 이번 중독법 논란에서 술이나, 도박, 마약 중독자들이 법 제정과 관련한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과 비교해 열흘 남짓 만에 23만명이 넘는 게임 이용자들이 반대서명 운동을 하는 것은 앞선 중독대상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을 보여준다.

또 게임의 폐해가 무엇인지,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도 증명하지 못한 채 근거 없이 전통적 중독 대열에서 게임이 담배를 밀어내버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흡연으로 인한 만성질환 관련 의료비 증가, 사망으로 인한 소득 손실, 간접흡연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2007년 기준 5조4603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정말로 게임의 사회적 비용이 이보다 크다면 도대체 어떤 항목에서 그런지 심히 궁금하다.

인과관계 측면에서도 그렇다. 최신 정신의학편람인 DSM-Ⅴ에서 `인터넷 게임 장애` 항목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단서가 분명히 제시됐다. 현상이 있지만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 발생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치료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관찰된 사례로 성급한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면 익사사고가 늘어난다는 관찰을 통해 아이스크림을 익사사고의 원인으로 파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임만 없으면 우리 아이들이 입시와 취업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학교공부가 모자라 학원까지 순회하는 학습이 과중하더라도 끄떡없이 잘 견뎌내리라고 믿는 것일까.

아이스크림이 익사사고의 원인이 아닌 것처럼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현상을 게임 탓으로만 돌린다면 그 아이는 다른 집착대상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의 가장 큰 문제는 객관적 근거가 미약한 상태에서 게임을 마약과 같은 심각한 부적응 중독유발이라는 사회적 유해물로 `낙인(labeling)` 찍은 점이다. 소수의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9·11테러는 다수의 무고한 아랍인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어버렸다. 게임이 4대 중독법으로 확정되는 순간, 게임은 그냥 마약과 같은 사회적 범주가 되어버리고 만다.

고부가가치 산업, 수출효자 산업 역군에서 졸지에 마약제조 업자 취급을 받게 된 사람들은 억울함에 절규한다. 일상 취미 때문에 전문가의 진단과 선고를 받아야 하는 잠재적 중독자가 돼 버린 23만명 게임 이용자들은 유례없는 단결력으로 집단적 항의를 표시했다. 이런 외침이 중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탐욕과 무지의 선동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면 현실인식에 장애가 있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zzazan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