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창조·상생의 저작권 생태계

[콘텐츠칼럼]창조·상생의 저작권 생태계

중국 명나라 말기 서화가 동기창은 서화에서 향기가 나려면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가 필요하다고 했다. 만 권의 책을 읽어 지식을 쌓고, 만 리의 여행으로 견문을 넓혀야만 비로소 `향기`가 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우리는 정보기술(IT)과 글로벌 네트워크 시스템 발달 덕분에 스마트 기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지식·문화 사회는 `소유`가 아닌 `향유`의 시대다. 물질소유 기반의 아날로그 경제와 달리 디지털 지식·문화 경제에서는 공유와 활용을 통한 융·복합 주체가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는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지식으로 대변되는 저작물의 축적과 소유가 중요했지만 지금 시스템에선 축적된 저작물의 공유와 활용, 융합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배경에는 정보기술(IT)이 선도하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토대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다양한 저작물들이 공유되고, 여타 산업들이 융·복합돼 새로움을 창조하는 저작권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명목 GDP 중 핵심저작권 산업 규모는 4.1%, 핵심저작권 산업이 여타 산업과 융·복합된 규모는 5.76%를 기록했다. 전체 저작권산업 규모는 9.8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저작권 산업은 기술과 지식·문화 그리고 여타 산업들과 융·복합하면서 과학과 문화를 아우르는 가장 진화된 형태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 저작권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창조를 통해 차가운 기술에 따듯한 문화감성을 입히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창조는 연금술과 같이 일순간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명상할 때 천천히 둥근 원을 그리며 걷는 선 수행법인 킨힌(Kinhin)에서 영감을 받아 아이팟의 둥근 스크롤 휠을 창안해냈다는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조의 본질은 기존 저작물에 대한 고찰과 깊은 통찰을 거쳐 내재된 효용과 가치를 타 분야와 융·복합하는 것에 있다. 기존 저작물의 내재된 핵심 가치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발현시키는 것은 저작권 산업의 부흥을 이끄는 원동력으로서 현대 사회의 효용 극대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 산업의 성장과 함께 저작물의 새로운 이용형태가 증가하면서 창작-유통-소비의 저작권 생태계를 둘러싼 갈등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권리보호와 저작물 이용 활성화라는 두 중심축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창조경제의 실현은 가까워지고 창작-유통-소비를 통한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지는 상생의 저작권 생태계 또한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에서 공연·방송권 사용료로 기대보다는 적은 수입이지만 약 16억원을 거둬들인 가수 싸이의 사례는 글로벌 창조 경제의 진전과 함께 앞으로의 저작권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시사한다.

건강한 저작권 생태계를 기반으로 창조적인 우리 저작물들이 해외 시장에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고 그에 합당한 수익을 받아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우리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저작권 산업의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창작을 비롯한 지식·문화의 활용과 올바른 유통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또 저작권의 시각에서 창조경제를 조망하고 저작권 생태계 균형을 위한 국내외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와 창작 촉진을 위한 제도적 측면의 지원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건강한 저작권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제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창조경제 시대의 저작권 생태계를 풍요롭게 가꾸는 일은 눈에 보이는 서화에서 향기까지 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유병한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 yu3491@copyrigh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