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위협받는 공공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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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고려대학교 BK21플러스 휴먼웨어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김동광 고려대학교 BK21플러스 휴먼웨어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치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불통`으로 규정되곤 하는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층 노골화되는 민영화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인 형태다. 정부는 아니라고 애써 변명을 하고 있지만 철도와 의료를 필두로 우리 사회는 이미 민영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흐름이 어느 정부에서 시작되었는지의 소모적 논쟁보다는 이 속에서 `누가 무엇을 얻고 잃는가`에 대한 성찰적 판단이다.

이 주제를 놓고 이미 많은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민영화를 시장가치와 공공가치의 경합과 그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민영화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본과 시장을 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다루려는 세계적인 경향의 한 측면이다. 시장에 대한 규정은 다양하겠지만, 시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며 오늘날 시장을 둘러싼 상황과 구조의 문제다. 과거에 시장은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라는 시대를 탄생시킨 원천 중 하나일 만큼 중요하고 역동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99% 희생과 1% 이익을 담보하는 체제로 고착됐다.

구멍가게로 대표되던 골목상권이 대기업 쇼핑마트에 밀려나는 것은 시장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힘으로 작용하고, 법률을 비롯한 제도가 그것을 떠받치기 때문이다. 구조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시장은 초국적 기업과 거대 자본 논리에 의해 구조적으로 편향돼 있다. 시장에 맡겨둔다는 것은 이런 편향된 구조가 아무런 저항 없이 작동해서 아홉을 가진 소수가 채 하나도 갖지 못한 다수를 마음대로 수탈하게 한다는 뜻이다.

의료와 교통 등 과학기술 영역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창궐하면서 과학기술 정책은 이른바 시장에서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하는지의 경제적 관점에 한층 더 골몰하게 됐다. 과학기술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점차 화석화됐다. 과학기술이 모두 이익을 위해 쓰인다는 공공재 개념은 사실상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지만, 요즘은 이런 허울뿐인 개념마저도 들먹이는 사람이 없다. 오늘날 과학은 철저히 자본에 복속됐다.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첨단 기술과 신약 개발은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에 몰려 그 혜택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에게 국한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 사회학의 새 흐름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불평등이다. 새로운 과학 정치사회학(NPSS)이라 불리는 진영의 학자들은 과학기술 정책에 경제주의적 메타포가 과도하게 지배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어떤 목적으로` 특정 과학기술 분야에 지원하고, 그로 인해 `누가` 혜택을 입는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시장가치가 아닌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철도와 의료 민영화 논란도 결국 시장과 공공가치의 경합이다. 공공가치는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권리, 기준, 사회적 지원, 절차 등을 보장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공공(public)이라는 개념에 익숙지 않다. 근대사는 식민지와 전쟁, 궁핍과 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고, 평등이나 공공성과 같은 가치를 지향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빈약한 경험 속에서 이 용어는 번역조차 쉽지 않으며, 공(公)은 기껏 관공서나 공중화장실을 떠올린다. 이런 역사와 연상의 빈곤 속에서 공공의 가치가 시장에서 저절로 보장될 리 만무하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함께 세워나가야 하는 `무엇`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평등을 이야기하면 곧바로 종북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한 발 내딛기조차 힘들다. 그렇지만 가야 할 길임은 분명하다.

김동광 고려대학교 BK21 플러스 휴먼웨어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kwahak@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