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창조경제도 기본기부터

[ET칼럼]창조경제도 기본기부터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변호인`이 인기다. 벌써 관객 수 950만명을 넘겼다. 개봉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평일 하루 10만명 이상 관객을 모을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다. 이 기세면 주말 사이에 1000만 관객 돌파가 예상된다. 새해 첫 1000만 관객 돌파 영화다.

변호인이 단숨에 1000만 관객 몰이를 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난 `부림사건`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한 내용을 모티브로 제작했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다음으로 `빽 없고 가방끈 짧은` 세무 전문 변호사 송우석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씨를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의 열정 넘치는 연기를 들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3년을 꽉 채워 청와대를 출입한 나에게 변호인이란 영화는 감동 이상이었다. 중간중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화 감상평이 아니다. 변호사 송우석의 비즈니스 감각과 실력에 깔린 기본기다.

송 변은 고졸 출신에 `꼴통 판사`라는 비아냥거림을 뒤로 하고 부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주목할 것은 송 변이 제시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상적인 변호인 업무가 아니라 부동산 등기 업무였다. 부동산 등기 업무로 변호사 사무실이 문전성시를 이루자 사법서사가 하는 일을 빼앗았다며 손가락질하던 다른 변호사들도 이내 따라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법서사들이 떼로 몰려와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송 변은 다시 세무 전문 변호사로 변신해 승승장구하며 돈도 원 없이 벌었고 부산에서 가장 잘나가는 변호사가 됐다. 이후 우연치 않게 부림사건 변호인을 맡아 다섯 번의 공판을 거치면서 변호사 송우석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뀐다. 송 변은 동료 변호사와 판검사의 타협 제안을 물리치고 끝까지 싸웠다.

송 변은 돈만 밝히는 속물 변호사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개척한 부동산 등기나 세무 전문 업무는 기존 변호사가 시도해보지 않은 블루오션이었다. 변호사의 기본인 법률지식에 유연한 사고와 논리가 더해진 결과다. 명령이나 지시 한마디로 모든 일이 끝나던 `흑역사`에서 송 변이 돋보였던 것 역시 논리와 법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열매 따먹기에 급급해 성과를 독촉한다 해서 몇 주 걸려야 익을 열매가 하루아침에 익지 않는다. 열매가 영글 때까지 제때 충분한 양분을 공급하고 진득하게 기다려줘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원천기술 개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기초공사를 꼼꼼하게 해야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창조경제도 서두르지 말고 미래 먹거리의 기본인 원천기술부터 챙겨야 한다.

산업 역시 기본인 표준을 쥐어야 시장을 주도하고 지배할 수 있다. 미국·유럽 국가가 선진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표준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표준분야가 홀대 받아왔다. `기존에 만들어진 표준을 갖다 쓰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우리는 선진국이 만든 표준을 가져다 썼고 캐치업 전략에 성공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가 강한 모바일 같은 첨단 분야는 해외에 참고할 만한 표준이 많지 않다.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우리가 주도해서 국제표준을 만들면 세계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창조경제란 이런 게 아닐까.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