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좋은 과학은 좋은 과학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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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좋은 과학은 좋은 과학책에서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하게 선행돼야 할 것은 좋은 책을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다. 국가발전의 추진 연료인 과학과 기술은 더욱 책이 중요하다. 인문학에 비해서 과학의 사회적 위상과 대우를 감안해 평가해볼 때, 책 만드는 일에 과학계 전반의 반성이 필요하다.

대략 과학기술 저술군은 전문기자, 교수, 국공립기관의 연구원으로 형성돼 있다. 그러나 외국과 달리 전문 잡지나 독자적인 과학 도서를 저술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은 아주 엷다. 그마저도 번역서가 많은 것은 문화로서 과학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의미다.

과학기술 전문가로 가장 두터운 층인 교수들도 써내는 수량은 외국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국내 주요 대학이 목표로 삼고 추적하는 국외 대학과 비교해볼 때 가장 떨어지는 지표 중 하나가 저술이다.

MIT를 비롯한 국외 최상급 대학출판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성공한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유럽의 작은 대학 중에는 우리나라 최상급 대학보다 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는 대학이 적지 않다. 유럽은 학위 논문이 크고 작은 책으로 편집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학의 학문적 깊이를 보려면 복잡하고 어지러운 지표 대신, 대학 구성원이 쓴 책이나 그 대학의 출판부를 통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책 만드는 일이 천대받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이 능력 척도로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과학자, 훌륭한 교수를 골라내는 주된 기준은 논문과 산업협력 실적이다. 논문의 우수성은 저널의 우수성으로 대개 환치돼 평가받기 때문에 상위 5%, 상위 10%의 저널에 논문을 내기 위해 모두 분투한다.

반면에 책의 평가 점수는 노력에 비해 형편없다. 교양과학서는 아예 쳐주지도 않는다. 연간 10편의 국제저널 논문을 내는 교수는 보았어도 1년에 과학책을 열 권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사실 두 권도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효용/비용`의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책을 만드는 일은 자해 행위다. 대학 기초과목 교재를 봐도 국외 유명 저서 번역본이 상당하다. 이미 잘 만들어진 책으로 가르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안전할 수도 있지만, 새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한 보상이 터무니없기 때문에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

과학책이 왜 중요한가. 좋은 책은 앞으로 과학을 이어나갈 후학, 청소년에게 중요한 씨앗을 뿌려준다. 과학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젊은이가 있는 나라의 미래는 언제나 밝다.

뉴스에서 소개되는 과학 업적과 관련된 저널을 찾아 읽고 이해할 수준의 중·고등, 대학생은 거의 없다. 과학의 소비자인 일반인은 더욱 그렇다. 이를 과학책이 메워야 한다. 과학책은 과학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의 절대 수를 늘여주는데 논문이나 정책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이 대중에게 읽히고 토론의 주제로 소비될 수 있도록 책이나 잡지를 촉매로 활용해야 한다. 국가는 그것을 위해서 과학저술가를 지속적으로 양성해야만 한다.

과학은 문화적 바탕이 튼튼할 때 자기 재생산성을 갖고 융성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대중의 이해 수준 밖이면 실패한다. 과학적 토양을 튼튼하게 하려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수준의 과학책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저술가가 안정적으로 일에 집중하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부럽기 짝이 없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의 성공에는 탁월한 글쟁이인 마틴 가드너와 그의 칼럼을 이어받은 호프스태터의 노력이 숨어 있다.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는 논문 수천 편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의 인류사적 가치를 지닌 과학책의 정수다. 우리도 이제 파편적 논문에서 한발 더 나아가 뿌리가 될 수 있는 위대한 책을 만들어 볼 시점에 와 있다.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hgcho@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