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76>DJ와 전자정부(2)

시위를 떠난 전자정부 화살은 행보(行步)에 거침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부처 업무보고 시 빠지지 않고 전자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자정부에 대한 김 대통령의 의지는 견고했다.

“지식정보화는 21세기에 생존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보 인프라는 전자정부의 완성으로 연결돼야 한다. 전자정부 완성 여부가 국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까지 구축한 정보 인프라를 기반으로 정보통신부가 전자정부 구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2001년 2월 19일 정통부 업무보고)

“전자정부의 핵심 과제인 정부조달 관련 업무의 전자상거래를 모든 공공 부문으로 확산시켜야 한다.”(2001년 4월 16일 기획예산처 업무보고)

“전자정부는 행정 능률 향상과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부패 없는 깨끗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절대 필요하다.”(2001년 8월 7일 정부과천청사 국무회의)

“전자정부 구현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게 아니며 천천히 봐가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한국이 세계 일류국가로 우뚝 서기 위해 2002년 말까지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는 국정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다.”(2001년 12월 24일 전자정부 구현 종합점검회의)

그해 2월 26일 오전.

김 대통령은 이날 정부중앙청사와 과천청사를 초고속통신망으로 연결한 가운데 사상 첫 ‘영상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그동안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는 대면(對面)회의였다.

서울 강북에 집무실이 있는 국무위원은 중앙청사에, 서울 강남이나 과천에 집무실이 있는 국무위원들은 과천청사에 모였다.

김 대통령은 U자형 테이블 중앙에 앉아 이한동 국무총리(현 포천장학회장)와 한완상 교육부총리(대한적십자사 총재 역임) 등 국무위원들을 좌우에 두고 맞은편에 설치된 120인치 대형 스크린을 보며 회의를 주재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정보화를 적극 추진해 이제 정보화를 세계 최선두에 서게 하는 기반을 다졌다”며 “오늘 영상회의가 임기 중 이루고자 하는 전자정부의 힘찬 출발점으로 정보화에 대한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국민의 정부 출범 3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영상 국무회의를 개최한 것은 정부가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 그동안 노력해왔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전자정부가 국정운영의 효율성과 투명성, 공정성을 높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국정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만큼 김 대통령은 전자정부특별위원회 활동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김성재 청와대 당시 정책기획수석(문화관광부 장관 역임, 현 김대중도서관장)의 말.

“전자정부는 부처 간의 중복과 칸막이를 없애고 투명성을 높여 부패를 방지하고, 규제를 대폭 개혁해 행정 효율성을 높이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김 대통령의 전자정부 구현 의지와 철학은 확고했습니다. 김대중정부의 정보화 핵심은 전자정부였습니다.”

김대중정부 시절 일본 교포기업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현 회장)이 청와대를 자주 방문했다. 어느 땐가 김 대통령이 손 사장에게 전자정부 구상을 이야기했다.

접견 자리에 배석했던 김성재 수석의 회고.

“김 대통령이 전자정부 계획을 말하자 손 사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정부 사업을 적극 돕겠다고 화답했습니다. 김 대통령이 나에게 진행 중인 내용을 손 사장에게 설명하라고 해요. 손 사장이 내용을 다 듣더니 ‘김 수석이 자기보다 더 전문가’라며 ‘더이상 조언해줄 게 없다’고 하더군요. 국방부의 첨단무기도 전자조달 시스템으로 도입하도록 했어요. 국방부에서 극비 보안사항이라며 펄쩍 뛰며 극구 반대했지만 대통령의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그해 2월 중순 어느 날.

안문석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위원장(고려대 부총장 역임,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장 역임, 현 고려대 명예교수, 정부3.0자문단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들은 조선호텔에서 조찬회의를 열기로 했다. 그날 새벽 서울에 폭설이 쏟아졌다. 시내에서 교통대란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위원들은 폭설을 흠뻑 뒤집어쓴 채 회의에 전원 참석했다.

안 위원장의 회고.

“그날 회의에서 ‘특위 위원은 전자정부 특공대다.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일하자. 위원장인 나는 전자정부 특공대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특위 위원들은 전자정부를 완성하는 날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일을 했습니다.”

안 위원장은 임명장이나 위촉장도 받지 않았지만 강력한 리더십으로 전자정부 업무 추진에 전권(全權)을 행사했다. 이론만 따지는 책상머리 교수들과는 천지차이였다.

안 위원장의 이어진 증언.

“특별위원회는 한시적 기구여서 나는 임명장이나 위촉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에 업무에 관한 한 전권을 나에게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각 부처의 칸막이를 없애고 전자정부 비전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특위 활동을 직접 챙기면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전자정부 회의도 청와대 별관 회의실에서 열었습니다.”

그해 3월 19일.

전자정부특별위원회는 이날 기획예산처 회의실에서 1차 회의를 열었다. 전자정부특위는 이 자리에서 2002년까지 전자정부 기틀을 완성하고 전자정부 추진사항은 정기적으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기로 했다. 또 전자정부 추진 원칙으로 국가 우선순위에 따라 사업을 배치하고 여러 부처가 관련된 사업은 통합하며, 전자정부 사업에 대한 사전·사후 평가를 예산 배정과 연계하기로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3월 26일 개각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청와대 비서실장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을 임명했다. 김성재 전 수석은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발령났다.

그해 5월 17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안문석 위원장을 비롯한 전자정부특위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자정부 구현 전략 보고회의를 주재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정부 각 부처의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가 먼저 전자정부 구현의지를 다지고 관련 사업을 강도 높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전자정부가 구현돼 정부의 생산성과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문석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전자정부 비전으로 최고 수준의 대국민 서비스 제공, 최적의 기업환경 제공, 생산성과 투명성 높은 정부 구현 세 가지를 보고했다.

안 위원장은 중점 추진과제로 △단일창구를 통한 민원업무 혁신 △4대 사회보험 정보시스템 연계 △인터넷을 통한 종합 국세서비스 △통합 전자조달 시스템 △국가재정정보 시스템 △시·군·구 행정정보 종합 정보화 시스템 △전국 단위의 교육행정 서비스 △표준 인사관리 시스템 구축 △전자결재 및 전자문서 유통 정착 △전자서명 및 관인 시스템 △범정부적 통합 전산환경의 단계적 구축 등 11개를 제시했다.

11대 과제는 각 부처에서 추천을 받아 2001년 2월 2일부터 위원들의 브레인스토밍과 외부 인사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했다.

안 위원장은 특위를 운영하면서 전자정부 추진 과정을 하나씩 확인하고 미진한 점은 독려했다.

실무지원단으로 나온 A부처 B국장은 “상사도 아닌 민간위원회 위원장에게서 이처럼 심하게 지적받기는 처음”이라고 회고했다.

민간실무지원단에서 활동한 손연기 당시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현 서울시립대 초빙교수)의 말.

“안 위원장의 리더십과 추진력은 대단했습니다. 거의 매주 조찬회의를 하면서 일을 진행했습니다.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되면 바로 시행했습니다. 성과가 금방 나타났습니다. 역시 일을 제대로 하려면 청와대와 각 부처가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회의에 지각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특위는 정부가 지원하는 업무용 차량도 승용차를 마다하고 승합차를 요구했다. 차속에서 회의도 하고 서류 검토도 하기 위함이었다.

전자정부특위는 강행군을 했다. 회의안건 사전검토와 부처 간 이견조정을 위한 실무지원단 회의를 51차례나 열었다. 그리고 대통령 주재의 전자정부전략회의를 세 차례나 개최했다.

안 위원장은 모든 회의 내용을 속기록으로 남겼다.

안 위윈장의 말.

“공정성·투명성·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회의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했습니다. 속기록을 (작성)하니 부처 간 이기주의가 사라졌고 논쟁도 줄어들었습니다.”

회의 결과는 정책기획수석이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2001년 11월 3일 한덕수 전 통상산업부 차관(국무총리 역임, 현 한국무역협회장)이 박지원 수석 후임으로 임명됐다. 박지원 수석은 2002년 4월 15일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후에도 몇 번 전자정부특위에 참석했다고 한다. 전자정부특위 간사인 김영주 청와대 기획정책비서관(산업자원부 장관 역임)이 2002년 7월 25일 재정경제부 차관보에 임명됐다. 후임 기획조정비서관에 박남훈 정책비서관(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역임)을 임명했다.

그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안문석 전자정부특별위원장을 비롯한 전자정부특위 위원 2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자정부 구현 종합점검회의를 주재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자정부를 구현하는 것은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시대에 세계 일류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전자정부가 구현되면 국민에 대한 서비스와 정부의 일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될 것”이라며 “각 부처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차질 없이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11대 중점사업의 추진 현황과 계획을 보고했다. 이런 전자정부 추진으로 2002년 9월 3일 전자조달 시스템이 개통됐고, 이어 그해 11월 1일 민원서비스 혁신시스템이 개통됐다. 정보화의 꽃인 전자정부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