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45>성급히 예단하지 말라

[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45>성급히 예단하지 말라

모든 질문에 척척 답을 해내는 스타트업 CEO가 역설적이게도 제일 신뢰하기 어렵다. 자주 받았던 질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즉흥적인 대답이다. 관료적인 조직에서는 필요한 능력이었겠지만 창업이나 투자 세계에서는 감점이다. 덧붙여서 고객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설문조사 결과가 이렇다는 둥 약간의 과장된 스토리를 보태 신뢰성을 높이려 한다. 설문조사지를 이 자리에서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또 혹시 과장이 드러나도 잠깐 착각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뭐 어때 작은 모순 한두 개에 불과한데.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두 단계 깊이 파고들어 질문하면 앞뒤가 안 맞고 얽히며 대답이 구차해진다. 처음부터 한번 확인하겠다고 말했으면 본전은 건진다. 경진대회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깊게 파지 못하지만 투자를 받을 때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계획대로 사업이 잘된다고 강조하면서 숫자도 비틀고 예외적인 사례로 과장하는 CEO를 보면 안타깝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그렇게 해야 할지 모르나 본인조차 거기에 속는 것이 가장 큰 해악이다.

사업이 성장할수록 고객이 ‘왜 우리 제품·서비스를 쓰는지’ 알기가 더 어려워진다. 첫째는 제품에 핵심과 상관없는 기능들을 추가해 측정변수가 복잡해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데이터를 열심히 분석하지 않아도 성장하니까 CEO가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저 피상적인 쉬운 답에 마취된다. 고객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보듯이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도 성장하고 있으니 상관없다.

사업과 고객에 대해 성급히 예단하지 말라. 성급히 추론하려하지도 말라. 쉬운 답을 취하면 편안함과 안정감은 느끼겠지만 그 너머는 오류의 절벽이 기다린다. 질문 자체를 계속 붙잡으라. 미해결 상태의 불안을 견디라. 개똥철학으로 아는 척하며 고객의 생각과 상황을 미리 재단해서 요리하지 말라. 설익은 과일을 미리 따서 먹지도 못하고 익지도 못하게 만든다.

‘몰랐었는데 새로 알게 된 것’ ‘내가 잘못 생각했었던 것’ ‘예상치 않았던 성공과 실패의 현상들로부터 배운 것’을 주로 이야기하는 CEO가 건강하고 미래가 보인다. 지금 아는 것도 ‘지금까지 알아낸 것’에 불과하다. 마케팅은 연구자의 길이며, 구도자의 길이며 수행의 길이다.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