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지속가능한 전환과 공공연구기관

[과학산책]지속가능한 전환과 공공연구기관

과학기술정책 연구에서 ‘지속가능한 전환(sustainability transition)’이라는 이론이 부상하고 있다. 주요 학술저널에서 이 논의가 특집으로 다뤄지면서 점점 주목받고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에서는 에너지, 자원 활용, 농업 분야에서 이 이론에 입각한 전환 정책을 시행한다. 환경보호·사회통합·경제성장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혁신 정책이 구현되고 있다.

이 논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사회·기술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 시스템에서의 개선활동으로는 근원적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활동방식, 하부구조, 시장으로 구성된 지속가능한 사회·기술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20~30년 장기간 시스템 차원의 혁신을 지향한다.

전환 정책은 질병 발생 후 대응보다는 질병 사전 예방에 중점을 맞추는 보건·의료시스템, 폐기물 사후처리보다는 폐기물을 재순환하고 사전에 발생을 억제하는 자원순환시스템, 다양한 하부구조와 교통수단을 개발해 이동을 확대하는 것보다 이동량 자체를 축소시키는 교통시스템을 지향한다. 질병 치료, 폐기물 처리, 교통효율화 정책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보고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전환정책은 컨트롤타워가 하향식 계획에 따라 대형 사업을 추진해 시스템을 한번에 변화시키는 시도를 반대한다. 정책과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고 다양한 집단의 이해가 부딪히기 때문에 여러 의견을 종합하고 실험을 통해 시행 가능한 대안을 찾아가는 ‘진화적’ 접근을 한다. 꿈은 원대하게 꾸지만 실천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렇지만 방향성은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전환정책이 논의되면서 시스템 전환을 임무로 정의하고 활동하는 연구기관도 등장하고 있다. 벨기에 플랑드르 소재 연구기관인 VITO(the Flemish Institute for Technological Research)는 시스템 전환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연구수행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나 기업 혁신활동 지원이 아니라 플랑드르 지역의 지속가능한 전환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VITO는 연구소 비전 재정립 작업을 추진해 2012년 ‘Transition in Research, Research in Transition’이라는 비전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문건에서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회·기술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연구 분과 사이의 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며 더 나아가 기업, 시민사회, 정부와 같은 다른 혁신주체를 참여시키는 초학제적 연구를 제시한다. 대안을 현장에서 직접 적용해 효과를 알아보는 실천형 연구를 역설한다. 그리고 연구소 내부의 전환도 주장한다. 분과 중심으로 연구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 연구방식으로는 이런 접근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VITO는 기후변화, 식량안정성, 자원고갈,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 고령화를 사회적 난제로 정의하고 이에 대응하는 5개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문제 해결을 주요 임무로 정하는 출연연구기관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전환론은 이들이 비전을 설정하고 운영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대학 및 기업과 차별화되는 출연연구기관의 위상을 정립하고 이론과 비전에 입각해 전략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상당한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기술기획, 실천 지향적 연구, 참여형 연구, 융합형 연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스템 전환은 연구기관의 전환이 필요하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ongwc@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