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만시지탄 재난망, 기재부가 풀어라

[데스크라인]만시지탄 재난망, 기재부가 풀어라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자꾸 목이 메여온다. 울분이 가시지 않는다. 어둡고 찬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20여명이나 된다. 정부의 무능이 원망스럽다.

분노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통령, 관료, 기업인, 언론인 등 누구 하나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통령이 거듭 사과했고, 기자들은 반성문을 썼다. 스승의 날을 맞아 교수와 교사들도 부끄럽다며 시국선언과 삼보일배에 나섰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일벌백계여야 한다. 그렇지만 ‘희생양 찾기’의 함정에 빠지는 건 경계하자. 희생양이 당장 분노와 응어리를 일시적으로 풀어줄 수 있지만 근원적인 처방은 아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언론이나 사정당국이 ‘희생양 찾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제도와 시스템의 허점을 파헤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관피아’로 불리는 관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당장 분노를 방출할 ‘마녀사냥’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새로운 ‘희생양’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잘못된 처방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최근 밝혀진 해경의 초동 대처의 문제점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 11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와 오버랩 된다. 재난 사고 발생 이후 인명 피해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에 허둥댔고, 결국 대형 인명 피해로 귀결됐다. 초동 대처에 대한 매뉴얼과 제대로 된 지휘체계만 있었다면 하는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치게 한다.

아이러니다. 그동안 안전에도 경제성 논리가 득세했었다. 그런데 대참사가 터지고 난 뒤에야 국가 재난망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시켰던 정책 당국자들이 그들이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 출동한 해경과 재난당국의 통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1초가 급한 상황에서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래서일까. 정책 당국자들의 변화가 감지된다. 경제성 평가보다 정책적 평가를 고려하겠다고 한다. 1년3개월을 끌어온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발표 역시 서두르고 있다.

애당초 국민 안전 문제를 돈으로 환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 경제성 잣대를 들이댄다면 자동차에 에어백도 장착하지 말아야 한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에어백은 폐차 때까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재난망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지 않겠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다. 공직사회에도 만연한 ‘돈의 논리’가 이젠 바로 잡혀야 한다.

누가 매듭을 풀 것인가. 관료들 사이에서 재난망은 ‘폭탄 돌리기’로 통한다. 11년간 지지부진했던 책임을 감사원이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정행정부 재난망사업추진단이 그토록 지리멸렬했던 것도 정책 결정 이후 불거질 책임론과 무관하지 않다. 목이 달아날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돈의 논리로 재난망을 옭아맸던 기획재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자존심 강한 기재부 관료들이 몇몇 희생양을 내세워 소나기를 피하고 싶은 유혹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구지하철 참사에 이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이젠 만천하가 알게 됐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더 이상 헛되지 않아야 한다. 매듭은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 그것이 책임지는 자세다.

장지영 정보방송과학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