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오래된 것들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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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고려대학교 BK21 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김동광 고려대학교 BK21 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어느 분야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특히 과학기술에서 첨단에 대한 관심은 유별나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술은 대개 첨단 기술, 또는 신흥(emerging) 기술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관심도 시대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왔다. 전통적으로 물리 과학이 첨단의 지위를 유지했고, 냉전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이 첨단 기술을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어느새 생명공학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그 후 나노와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만나본 중·고등학생들 중에서는 뇌과학을 전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일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은연중에 사람들은 기술이란 첨단 기술을 뜻하고, 생명공학이나 나노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TV나 신문에서는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의 광고가 쏟아지고, 정부와 민간 투자는 신기술 개발에 일차적으로 쏠려 있다. 이처럼 최신 또는 첨단만이 기술이라고 여겨지는 이런 경향은 ‘첨단 이데올로기’라고 불릴 법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신기술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기술이라고 여기지도 않는 오래된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기술사학자인 데이비드 에저튼은 ‘오래된 것들의 충격(The Shock of the Old)’이라는 저서에서 흔히 21세기를 움직일 기술로 로켓, 인터넷, 나노와 같은 첨단기술이나 거대기술을 꼽지만 이런 기술들은 인류가 의지하고 있는 수많은 기술들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에서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인력거는 세계 여러 곳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의존하는 중요한 기술이며, 지금도 세계적으로 자동차보다 많은 대수의 자전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흔히 핵폭탄이 2차 세계대전을 끝냈다고 생각하지만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듯이, 거대 과학기술이나 첨단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과장되는 반면에 모기장이나 재봉틀과 같은 단순하고 작은 기술이 실생활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이로움을 준다는 사실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것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사회는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뒤섞여 있으며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오래된 것들에 의존하고 있다. 혁신과 새로움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의 홍수에서 자칫 간과될 수 있지만, 오래됨은 새로움이 현실 속에서 인정받아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부가 된 것들이다.

이미 우리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당연시되고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선박이나 지하철과 같은 오래되고 단순한 기술은 운송 체계 중에서 여전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의존하는 기술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연안의 여객선을 비롯한 해상 운송체계 전체의 낙후성에 새삼스럽게 경악했다. 첨단에 대한 관심에 밀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사고가 나자 비로소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건조된 초대규모 유조선이나 첨단 시설을 갖춘 해외의 크루즈선들이 화려하게 조명을 받지만, 도서민들이나 생업을 위해 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선박은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그리고 물을 건너는 탈것으로 뗏목이나 나룻배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연한을 한참 넘긴 낡은 선박, 턱없이 형식적인 안전 규정,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은 허술한 사고 대응체계 등 이번 세월호 침몰과 그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혁신과 새로움에 관심이 쏠려서 가장 기본적이고 오래된 기술을 소홀히 다룬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첨단기술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의존하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것은 평범하고 오래된 기술이며 새로움과 오래됨이 중첩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동광 고려대 연구교수(BK21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kwahak@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