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대학서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수업을 해야 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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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대학서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수업을 해야 하는 현실

약 14년간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국내에 정착한 지 2년이 지났다. 한국에서 물리교육을 전공하고 과학교사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미국으로 건너가 과학교육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주립대학에서 10여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개인사까지 언급하는 것은 개인적 경험이 우리 교육과정 개정에 관한 사견의 근거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 과학교육 실제를 보고 가장 감동받은 것은 모든 과학수업에서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실험실에서 실험해보지 않고 고등학교 자연계열을 졸업했기에 내가 감동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미국에는 고등학교 필수 이수 학점을 정할 때 ‘실험을 하는 과학’이 있어야 한다는 별도의 교육과정 규정도 있었다. 또 이런 과학 과목을 1년간 매일 50분씩 수업해야 한다. 이점 또한 나를 놀라게 했다.

또 하나 놀라웠던 점은 대학을 진학하려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물, 화학, 물리를 필수 과목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특히 물리는 수준 높은 과목으로 간주돼 대학입학 전형 시 일부 대학에서 가산점까지 줬다. 이것은 진학하려는 전공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어려운 과목을 성실하게 수강하고 이해해 학점을 받았다는 점을 높이 참작하고, 대학에서 충분히 수학할 능력 및 자세의 증거로 본다는 것이다.

대학 진학을 하려는 학생들도 전략적으로 사전에 수강하는 선택 항목이 AP(Advanced Placement) 과목들이다. 이공계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보통 AP 생물, 화학, 물리 중에서 최소 두 과목을 수강한다. 즉 고등학교에서 미리 대학수준의 과학과목을 수강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고등학교 과학교육과 미국 과학교육의 차이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실험의 유무, 둘째 한 가지 교과의 수업을 1년 동안 매일 수강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공계 대학 진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대학 수준의 과학을 미리 고등학교에서 수강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대학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학생들은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일반 과학 교과목을 수강한다. 예를 들면 과학과 기술, 생물 탐구, 응용과학, 생태학, 해양학 등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목을 듣는 학생의 특성상 이들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는 가능한 많은 학생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재미있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두 경로의 과학 교육 과정 목적은 과학적 소양을 가진 시민 양성과 함께 미래 과학기술학계를 짊어질 이공계 전문가 양성이다. 즉 누구나 과학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 내용은 미래 진로에 따라 다르게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바라본 과학 교육은 미국에서 경험한 것에 비해 너무나 절망적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고등학교에서 기초 과학 수업을 수강하지 않고 일부 이공계에 진학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공계 학업 수준 하락에 가슴이 철렁거린다.

이렇게 기초가 부족한 채 이공계 학과로 진학하는 것은 현 교육 시스템, 입시 위주의 교육 문화 그리고 교육 특히 고등학교 교육에 관한 가치의 문제라는 점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학을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학 졸업장을 위한 것이지 미래 자신이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한 준비로 또는 인성, 소양 등을 위한 인간적 성장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 나라가 입시문제를 학생의 미래 사회를 살아갈 사람으로서의 인간적 성장으로 다루기보다 치열한 생존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라는 주제로 교육과정 개정 노력이 한참인 이때 과연 미래를 향한 교육과정에서 과학 교육은 얼마나 어떤 수준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다함께 걱정했으면 한다.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과학교육을 강조하는 것을 경험하고 돌아와 국내 과학교육 현실을 보며 몸이 떨리는 위협을 느낀다.

강남화 한국교원대 교수 nama.k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