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비정상의 정상화는 ‘읍참마속`으로

[미래포럼]비정상의 정상화는 ‘읍참마속`으로

서기 228년, 촉나라 승상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지시를 어기고 전략적 병참 요충지인 가정을 사마의 수중에 내준 젊은 장수 마속을 주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참한다. 제갈량은 사사로운 정으로 군율을 어기면 마속보다 더 큰 죄를 짓게 된다면서 울며 마속을 참한다. 그로부터 세간에 신상필벌이나 일벌백계의 의미로 ‘읍참마속’이란 고사가 자주 등장한다.

요즘 최대 화두는 상식적으론 이해하기 힘든 ‘군 가혹행위’다. 오죽하면 아들 가진 엄마들이 모이기만 하면, 어느 부대가 가혹행위가 덜 한지의 정보를 주고받을까 싶을 정도다. 더구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상급부대에 보고 조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이슈가 돼버렸다. 심지어 이러한 책임 회피의 역사적 뿌리를 임진왜란 때 선조의 한양 포기, 해방 직후 반민특위 폐지 등에서 찾는 자조적인 기사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는 명대사로 유명한 ‘명량’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과연 책임회피 의식은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부정적 정서 때문일까? 결론은 절대 아니다. 얼마 전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더니, 선진국에서 온 학자들이 우리나라 KTX를 타보고는 극찬했다. 특히 개찰하지 않고 곧바로 승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며 놀라워했다. 부정승차 시 부가금 10배라는 가혹한 제도 덕택에, 선량한 시민은 신속하게 승차할 수 있어 좋고, KTX 또한 인건비를 절감하니 윈윈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 비정상은 도처에 만연해 ICT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던 차에 현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 정책은 만시지탄이지만 퍽 다행이고, KTX 사례에서 보듯 그 해법은 ‘읍참마속’에 있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KTX 무개찰의 결과, 탑승자는 KTX가 나를 믿는다는 만족감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밀레니엄 시대의 아이콘인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글로벌 시민교육을 어릴 적부터 강화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얼마 전 영국 왕위 계승이 유력한 윌리엄 왕자가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공수특전단(SAS)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수행한 해병특수부대(SBS)에서 생명을 무릅쓰고 복무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그 순간 학창시절 유독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했던 은사님 생각이 떠올랐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수업 대신, 이른바 인생살이 특강을 하셨던 덕택에 우리 동기 중에는 유난히 군 미필자가 적다.

직장인과 같이 머리 굵은 사람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글로벌 시민교육을 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든지 아니면 귀를 아예 막아 버린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초·중·고·대학생들에게는 장차 중요한 인생의 나침반이 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읍참마속’으로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할수록, 군 가혹행위 사건이 보여주듯이 사건 자체를 덮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반작용 또한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군에서의 보안이 보장된다는 전제 하에 휴대폰 허용 등 반작용을 무기력하게 만들 다양한 대안도 동시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재인 단국대 상경대 교수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