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인문학적 상상력의 오용과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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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4대 강 감시 로봇을 꼭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야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흐르는 강물에서 지느러미 추진체의 물고기를 며칠씩 버티게 해줄 배터리 기술이 없다는 것은 과학적·공학적 상식이다. 로봇을 환경 친화적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고 다른 물고기가 놀라지 않도록 작게 만들어, 떼를 지어 편대 유영을 하도록 꾸미는 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인지 모르겠다. 이 대실패 작전에 영감을 넣어준 황당한 융합적 발상은 4대 강 사업에서 이미 도망을 쳐버렸고 애꿎은 기술자들만 욕을 듣는 형국이 됐다.

교육과정 개편으로 과학계가 소란하다. 과학을 더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수업시수를 줄인 것 때문이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열심히 찾아보려고 했으나 교육과정 개편위원회의 자료를 얻지 못해 알 수가 없었다. 개편위의 요약 자료에 의하면 이번 개편의 목적은 문이과 구별 없는 융합형 사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결합된 과학소양을 위해서라고 한다.

과학의 수준에는 문턱점이라는 것이 있다. 그 문턱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현실에서 무용하다. 예를 들어 문턱점을 넘어서지 못한 프로그래머 열 명을 모아도 한 명의 고수를 당해내지 못한다. 바둑에서 5급짜리 열 명의 수를 합친들 초단 한 명을 이길 수는 없다. 과학, 공학, 나아가 스포츠나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전공자들은 이 단계별 문턱점을 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초중등 교육은 그 첫 문턱점을 넘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초중등 과정에서 과학교육을 축소하면 개인별 문턱점 탈출 시기는 더 늦어지고, 이는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귀결된다. 인문학적 상상력의 필요성 운운하는 것은 실제 현장과학에 무지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과학 공학과 결합해 꽃을 피우려면 결합할 과학 수준이 최상위 문턱점을 넘어야 한다. 특정 분야에서 대가적 수준에 이르면 모든 학문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저절로 융합이 된다. 체제 내에서의 지위와 안정성이 확보된 사람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은 도움이 되지만 배우는 아이들에게 이런 고차원 개념은 현실을 호도하게 만든다. 초중등 초보과정에 어설픈 인문학적 관념이나 비유를 활용하게 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겉멋만 들게 된다. 경제학 기초이론도 모르면서 주워들은 속류 마르크스 이론만 가지도 떠드는 삼류 운동가들의 모습이 그런 것이다. 초심자가 피아노 연주에서 루바토를 잔뜩 넣어 대가급 폼을 잰다면 이를 용인하는 스승은 없을 것이다. 초중등 과정에서의 과학은 그 자체로 매우 야무지게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초기 때문이다. 실험과 측정에서 인문학적 유연함을 발휘해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문이과 통합교육안의 핵심은 문과 학생들에게도 과학적 내용을 충분히 가르치는 것이 돼야 한다.

과학자나 공학자들이 사회구성체론을 모르면 무식한 사람이 되지만, 역으로 인문학자들이 주요 과학적 개념, 예를 들어 유전체와 유전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모르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에서 실패한 제품이나 사업의 원인을 인문학적 상상력 부족으로 떠넘기는 것은 대표적인 인문학 오남용 사례다. 시장의 변덕스러움은 어떤 학문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인문학적 상상으로 가득 채워진 로봇물고기 문제로 돌아가 보자. 당시 고위 관료들에게 조금이라도 과학과 공학에 소양이 있었다면 이런 사업은 태동조차 않았을 것이다. 문이과 통합교육이 시급한 층은 초중등 학생이 아니라 정책을 수립하는 고위공무원들이다. 특히 교육정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인 과학지식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당국은 초중등 교과편성의 문제를 더 이상 인문학자와 과학자간의 싸움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과정 편성위원회는 현장 과학자·공학자들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이런 인문학의 기본 명제를 배신하는 작금의 교육과정 편성 작업은 그 자체로도 인문학 정신에 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hgcho@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