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동의의결제

[관망경]동의의결제

형벌은 범법자의 법익을 박탈하는 처분으로, 여기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표되는 응보주의가 있다. 범법자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교화주의, 잠재 범법자를 억지하기 위한 예방주의도 대표적인 형벌의 목적이다.

올해 이슈가 된 동의의결제는 응보주의보다는 교화와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제도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동의의결제는 불공정 거래 혐의가 있는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 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을 제안해 타당성이 인정되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찔리는’ 기업이 알아서 개선책을 내놓으면 이행을 전제로 법적 제재를 면해주는 것이다.

제도 도입은 2011년에 됐지만 첫 번째 적용 사례는 올해 나왔다. 지난 3월 네이버·다음의 동의의결이 확정됐고, 최근 SAP코리아의 이행안도 최종 결정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키아는 기업결합 관련 동의의결을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동의의결 사례가 늘면서 국정감사에서 적잖은 비판이 나왔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SAP코리아를 언급하며 “영업전략에서 나온 것이고 추상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네이버가 이행안을 어기고 있다며 강제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안은 달라도 결국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게 요지다.

사실 이런 논란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불공정 혐의가 있는 기업에 응분의 처벌을 가하지 않는 사실 자체가 국민감정과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서서 도입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한미 FTA 체결을 계기로 들어온 제도”라는 공정위 관계자의 말이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동의의결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형벌의 목적에 응보주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 피해 구제에 보다 효율적이고, 다른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억지하는 효과가 있다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정위의 역할이다. 동의의결제가 제재를 피해가는 수단이 아닌, 공정한 시장 조성을 위한 대안으로 정착되려면 공정위의 보다 정밀하고 세련된 판단과 감독이 필요할 것이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