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과문비 감사의 모순

[관망경]과문비 감사의 모순

“개인적인 용도로 과학문화활동비(과문비)를 쓴 것도 아닌데 마치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과문비를 정확히 용도에 맞춰 쓰라고 하면서 연달아 전시회는 나오라고 하니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출연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의 하소연은 올해 실시된 미래부의 과문비 감사에서 비롯됐다.

미래부는 올해 출연연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과문비 감사를 실시했다. 과문비는 과학기술 대중화와 연구성과 확산을 위한 비용이다. 연구비 중 간접비에서 일정 비율이 과문비로 편성된다. 문제는 과문비가 해당 사업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럴 경우 규모가 작은 사업의 과문비는 수십만원 단위에 불과하다. 실제로 쓸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출연연은 관행처럼 단위 사업의 과문비를 모아서 사용해왔다.

원칙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니 우려대로 많은 기관이 적발됐다. 감사에서 적발된 기관은 과문비를 집행한 담당자가 진술서를 썼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사람들이 굴욕감과 좌절감을 호소했다.

출연연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과문비를 유용했다면 모르겠지만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미래부가 그동안 과문비 제도의 문제점을 몰랐다고 보기도 어렵다.

모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정부가 창조경제 성과홍보 전시회를 잇달아 진행하는 것도 출연연을 어렵게 한다. 지난달부터 출연연이 참가하는 행사만 해도 ‘대한민국 과학창의축전’, ‘R&D 성과확산대전’, ‘대한민국 산업기술 R&D 대전’, ‘창조경제박람회’가 있었고 내년 초에도 ‘출연연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행사가 열린다.

출연연은 과문비 중 일부를 전시회 참가비용으로 써왔지만 이젠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규정을 어기면 감사하고 지적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규정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규정을 고치는 것도 감사의 역할이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