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문화가 있는 날

[관망경]문화가 있는 날

우리나라 직장인이 평일 저녁 가족과 여가를 즐기는 것은 일종의 사치다. 잦은 야근과 업무상 술자리가 만연한 탓이다. 과거 한 정치인의 캐치프레이즈로 등장한 ‘저녁이 있는 삶’이 많은 공감대를 얻고, 퇴근 후 문화·취미생활을 즐기는 직장인이 부러움이 대상이 된 것은 말 그대로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 ‘문화가 있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평일에 정시 퇴근해 문화와 여가를 즐기자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지정된 ‘문화가 있는 날’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올해는 예산이 대폭 늘어나 보다 풍성한 행사가 기대된다.

하지만 국민 삶에 문화가 스며들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아직 ‘문화가 있는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국민이 많다. 정시 퇴근이 어려운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세종정부청사 사무실 조명이 매일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으니 민간 기업 사정은 오죽할까. 불이 꺼진 사무실 직원 상당수도 어디선가 업무상 회식에 참가하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근본적으로는 ‘팍팍한 삶’이 문제다. 어려워진 살림살이 때문에 문화·여가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경제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간이 있어도 문화를 즐기지 못한다. 국민의 여가활동 1위가 TV시청(51.4%), 2위가 인터넷·SNS(11.5%)라는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는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문화가 있는 날’의 성공은 결국 국민의 시간·경제 여유 확대에 달렸다.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국정기조 ‘문화융성’이 문화부만이 아닌 모든 부처의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