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지나쳐도, 모자라서도 안 되는 ‘소금’

인류 역사상 소금만큼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소금을 먹어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금은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하면서부터 음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사용돼 왔다.

[KISTI 과학향기]지나쳐도, 모자라서도 안 되는 ‘소금’

특히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소금을 활용했다. 소금으로 이를 닦는 것은 물론 혀에 백태가 끼거나 발가락에 무좀이 생겼을 때 소금을 바르거나 문질렀다. 또 치통이나 피부병이 발생했을 때도 소금으로 닦고 씻는 등 소금을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겼다.

실제로 한의학에서는 소금을 중요한 약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명나라 대표적 약학서인 ‘본초강목’에는 총 75종의 소금을 활용한 처방이 수록돼 있고, 세종대왕 시절 편찬된 ‘향약집성방’에도 소금 치료법만 수백가지가 넘게 실려 있다.

이외에도 소금은 병을 걸리게 하는 귀신을 쫓는 주술 행위에도 많이 사용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줌을 자주 싸는 아이에게 키를 씌워서 소금을 얻어오는 풍습이다.

이처럼 한 때는 만병통치약이자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까지 여겨졌던 소금이 최근 들어서는 성인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까지 몰리며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소금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고혈압 유발 요인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소금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점이 많다. 지금도 소금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성인병을 일으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식탁에서 퇴출될 위기로까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금은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적게 먹어도 탈이 난다. 좋은 예가 마라톤이나 축구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을 할 때다. 우리 몸은 일정 수준의 염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소금 섭취를 거의 하지 않은 채 물만 마시면 체내 염도가 떨어져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금이 면역력 증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동안 몰랐던 소금의 효능이 재조명되고 있다. 독일과 미국 공동 연구진이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 최근호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소금이 사람 몸에 침입한 세균을 파괴하는 면역력을 기르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나단 얀취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와 옌스 티체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팀은 쥐를 대상으로 소금 섭취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던 중 상처 난 피부에서 고농도 소금이 축적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흥미를 느낀 연구진은 대식세포(몸에 침입한 세균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를 배양하는 2개의 배지에 대장균을 감염시킨 후 한 쪽에만 소금을 첨가했다.

그 결과 소금을 첨가한 배지에서 자란 대식세포가 훨씬 빠른 시간에 대장균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실험쥐를 대상으로 한 소금 섭취 실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소금을 많이 먹인 쥐들이 적게 먹인 쥐보다 세균 감염으로부터 더 빨리 회복됐다.

연구진은 “항생제도 없고, 수명도 짧았던 조상들에게 짜게 먹는 것이 세균 감염을 물리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소금을 많이 먹을수록 면역력이 따라 증가하는 것은 아닌 만큼 소금을 ‘먹는’ 용도보다 ‘바르는’ 용도로 바꾸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피부가 세균에 감염됐을 때 먹는 소금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소금을 함유한 수액이나 젤 등을 발라서 피부의 염분 농도를 상승시키자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제안을 통해 소금이 지나쳐도 안 되지만 모자라서도 안 되는 존재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