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과학기술과 우생마사(牛生馬死)

[미래포럼]과학기술과 우생마사(牛生馬死)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을 맞았지만 온 나라가 메르스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와중에 과학계와 대덕연구단지 주변이 들썩거리고 있다. 얼마 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표된 정부 연구개발(R&D) 혁신방안에 관한 논란이다. 국가 R&D를 효율화하고 출연연 역할을 재정립하며 연구관리기관을 재설계하자는 총론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이곳저곳에서 토론회와 설명회로 모이고 논쟁이 깊어지는 것을 보면 추진 과정에 소외감이 표출되고 그동안 품어왔던 국가 연구개발 정책에 여러 속내를 내어 놓고 싶은 모양이다. 연구소는 연구소별로, 연구관리기관은 그들 기관대로, 대학은 대학별로 갖가지 논의가 깊어지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정부 혁신방안 세부 내용을 놓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부 R&D 혁신방안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울 때 고려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난 30여년간 과학기술 R&D에 참여해 왔고 지금도 국가 R&D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고언을 하고자 한다.

옛말에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교훈이 있다. 큰 홍수를 만나서 소와 말이 떠내려가면 결국에는 소는 살고 오히려 수영이 능숙한 말은 죽는다는 이야기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교나 방책을 부리지 말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바로 지금 우리나라 과학계와 국가 R&D 정책 추진에 요구되는 자세가 우생마사다. 단기적인 효과를 노린다면 효율성과 일사불란함이 최고의 가치일는지는 모르지만 과학기술은 근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선행 투자를 의미한다. 과학기술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려운 미래에 대비하려면 사람과 철학과 근본에 대한 관심이 보다 중요하다.

외국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선진 각국은 과학기술을 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경쟁적으로 선제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모든 국가가 과학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국가 미래 필수 요소로 인정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기술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투자 전략과 추진 계획 마련도 중요하지만 병행해 안정적인 과학기술 인력 확보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 환경 조성 또한 중요하다.

과학기술은 사람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그 결과가 나온다. 과학기술 투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물론 국가 재정 투자 효율 측면에서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바라보면 비효율적인 면이 많다. 그동안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했는데 결과가 고작 이 정도고 국가 경제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동안 전전자교환기, 메모리반도체, 이동통신기술 등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바가 컸지만 총론에서 보면 일견 맞는 말이다. 더구나 국민 생활이 어려워져서 먹고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지금 같은 시기에는 말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강국을 너머 선진국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생각과 대응이 맞는 걸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수출이 막히면 국가 존립이 어려워지는 수출중심 국가다. 수출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과 기술 국제경쟁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술력에서 글로벌 넘버원이 돼야만 제품 우위성 확보가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과학기술 경쟁력 우위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확보와 미래 국가생존성 확보 측면에서 핵심이라는 것이다. 작금의 세계는 무한경쟁시대에 들어가고 있어서 지역, 내수 시장 경쟁력만으로는 무한 연결성의 스마트 지식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 정보통신 분야 무한경쟁은 애플 아이폰 등장 이후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의 추월도 괄목할 만하다. 21세기 중반은 현실과 가상세계가 혼합된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이 인간의 일상을 바꿔 나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과학기술로 인해 산업 지형을 바꾸는 스마트 혁명이 일어날 징조가 뚜렷하다. 돈의 유통 구조가 바뀔 것이고 3D 프린팅으로 인해 제조업 형태가 혁신되며 의료산업도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심지어 학교 중심인 교육 형태까지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이 급변하는 미래사회로의 전환에 대비해 국가정책 추진이 선순환적으로 이루지려면 반드시 과학기술 종사자의 인식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국가 재정투자에 대한 책임의식과 국가 미래를 견인하겠다는 선각자적인 태도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무한경쟁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연·학의 협업에 의한 정부 R&D 정책 추진이 다시 한 번 요구된다.

일부에서 제기한 혁신방안 비판에서 정부 R&D 혁신방안의 충실함은 차치하고 추진의 진정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은 과학기술에 우생마사의 교훈에 따른 정책추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과학기술 국제경쟁력 확보는 우리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다. 좋은 정책, 좋은 철학에 더해 과학기술 근본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요구된다. 바로 지금이 국가 미래를 감당해야 할 과학기술 연구개발 분야에서 우생마사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책당국자와 연구자 그리고 학생과 교수가 어우러지는 순리의 R&D 생태계 마련을 기대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의 독주와 일본과 중국의 파상공세 속에서 넛 크래커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어 국제경쟁력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스마트 지식사회를 맞아 정보통신 강국을 넘어 과학기술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모두 우생마사의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손승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위원 swsohn@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