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용인불의’와 ‘용인불신’

영화 ‘명량’에 이어 드라마 ‘징비록’의 선풍적인 인기로, 충무 이순신과 서애 유성룡은 위기에 처한 우리 민족을 구했던 충신의 아이콘이 됐다. 반면에 선조는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군주로 묘사되고 있다. 심지어 임진왜란의 결과, 명나라와 일본은 패망의 길을 걷고 정권마저 교체됐지만 정작 전쟁터였던 조선은 그대로 이씨 왕조가 유지됐던 사실에도 찬반이 엇갈린다. 즉 조선이 그 많은 외적의 침입을 겪고도 전 세계에서 전무후무하게 500여년간이나 왕조를 유지한 끈기의 민족이라고 자랑하는가 하면, 그때 명나라나 일본처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면 심기일전해 구한말에서와 같은 국치는 없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일본 메이지 유신을 보면 후자가 일리 있어 보이지만 청나라 말기를 보면 그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래포럼]‘용인불의’와 ‘용인불신’

부질없는 역사의 가정보다, 임진왜란이 시사하는 바람직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충무나 서애의 리더십을 기본으로 하되, 선조의 리더십도 일부 가미돼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람을 쓰면 끝까지 신뢰하는 전자를 ‘용인불의(用人不疑)’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기용했더라도 항상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 후자를 ‘용인불신(用人不信)’ 리더십이라고 하자.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란 ‘의심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마라’는 것으로, 중국의 송사(宋史)에서 나온다.

서애는 충무의 됨됨이를 어려서부터 알아본 나머지, 임진왜란 때 어명을 거역하고 출전하지 않은 적도 있는 충무를 끝까지 믿고 구명운동에 앞장선다. 또 중국 삼국지에서 관우 피살 사건을 계기로 오나라와 촉나라는 적대국이 되자, 오나라 손권은 촉나라에 화의를 청하기 위해 신하인 제갈근을 통해 편지를 보낸다. 제갈량의 형이라는 이유로 촉나라와 내통한다는 모함을 받게 되지만, 손권은 끝까지 믿고 대장군을 맡긴다. 이에 보답하듯 제갈근은 평생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손권을 극진히 보좌한다. 전국시대에 연나라 소왕은 위나라 낙의의 재능이 탁월함을 알아보고 상장군에 봉한다. 낙의는 연합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해 70여개 성을 수중에 넣고, 2개 성만 남았는데 자꾸 시간을 끌었다. 주위에서 성 안에 그의 아들이 있어 그 성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다는 등 온갖 모함이 난무했지만, 소왕은 낙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문제는 의심이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당나라 현종은 거구인 안록산에게 불룩한 배를 가리키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나?”고 묻자, “오직 황제에 대한 붉은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아부를 떤다. 주위에서 안록산이 모반의 뜻이 있다고 여러 차례 간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안록산을 철썩같이 믿는다. 하지만 결국 안록산은 현종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결론적으로, 뉴밀레니엄 리더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은 ‘용인불의’와 ‘용인불신’의 조화다. 오죽하면,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이라고 했을까!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록산에서 보듯이 ‘용인불신’의 리더십 감각도 겸비해야 비로소 진정한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더가 피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토사구팽(兎死狗烹)’ 리더십이다. 선조는 열세였던 전세를 역전하는 데 기여한 서애를 전쟁이 종식될 기미를 보이자 북인의 탄핵을 묵인하고 삭탈관직하고, 의병장 김덕령을 이몽학의 난과 연루시켜 무고하게 처형한다. 심지어 후대에 충무의 자살설까지 낳게 하는 원인 제공자가 돼버렸다. 그 결과 선조는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고 조선 500년 이씨왕조를 지켰지만, 도성을 버리는 순간 분노한 백성들은 경복궁을 불태워 버렸다. 두 왕자도 왜군이 잡은 것이 아니라 흥분한 백성들이 넘겼던 것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구한말 왕조를 폐지하자 모든 국민이 반겼을 뿐 아니라, 왕족 후손이 돈이 없어 찜질방을 전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그 어느 누구도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리더에게 권한과 책임은 비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누구든지 그 위치에 오르게 되면 권한만을 생각하고 책임은 등한시하기 십상이며, 책임회피 수단으로 토사구팽 유혹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어진 권한과 함께 책임도 동시에 염두에 둔다면 길이길이 ‘존경’을 받게 되지만, 책임이 결여된 권한은 훗날 본인에게는 ‘인격 손상’을, 후대에까지 그 피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뉴밀레니엄에도 통용되는 바람직한 리더십까지 생각하게 하는,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갈수록 SW산업진흥법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바 발주자, 대기업 및 중견 SI업체, 솔루션업체 등 생태계 주체의 ‘용인불의’와 ‘용인불신’ 조화 리더십이 아쉽다.

오재인 단국대 상경대학장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