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일은 과기계부터 시작해야

[데스크라인]통일은 과기계부터 시작해야

최근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다녀왔다. 평일과 주말 하루 관광객이 3만명가량 된다. 천지에 이르는 북파나 서파 길은 시멘트로 잘 포장돼 있다. 미니버스와 대형버스가 1분 간격으로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백두산 개발은 중국 동북공정 핵심이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돈까지 ‘신바람 나게’ 번다. 하루 입장료만 1인당 285위엔(약 5만2000원)을 받는다. 1년이면 수익이 수천억원이다. 백두산 반을 소유한 북한은 손 놓고 있다.

백두산 북파코스 1400계단을 오르며, 떠오른 건 ‘남북통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서울서 열린 유라시아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주창했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첫 단추이자 마지막 단추다.

중국, 인도, 러시아, 유럽 시장으로 뻗어가려면 북을 지나지 않고는 안 된다. 유럽철도나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몽골횡단철도(TMGR)와 단절돼 있다. 굳이 가려면 배타고 중국으로 나가야 한다.

물류나 에너지망 등 다른 복잡한 셈법은 놔두고, 북이 철로나 고속도로 등 통로를 내주고 통행료만 받아도 연간 조 단위 수익이 예상된다.

북이 이를 잘 알면서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뢰는 통일로 가는 출발점이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만들어 쌓아 가면 된다.

정치색이 거의 없는 과학기술 분야부터 협력을 시작하는 게 쉽다. 남북 과학기술 협력사를 보면 아쉬움이 많다. 가장 활발했던 때는 2000년대 초반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북한 중앙과학기술통보사와 남북 네트워크를 연결해 컴퓨팅 자원을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남북 과학자들은 중국 단둥서 자주 만나 서로 가슴 속 얘기도 꺼내놓고 교류했다. 남북기술표준협력단도 발족됐다. 남북과학기술용어집까지 발간됐다.

현재 운영 중인 평양과학기술대도 2001년 남북이 합의해 9년 뒤 만들었다. 남북 최초 합작 정보기술(IT)중심 대학이다. 현재 박찬모 전 포스텍 총장이 평양과기대 명예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1년 중 6개월은 평양서 지내며 강의한다. 김진경 연변과기대 총장은 평양과기대 총장직을 맡고 있다.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은 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이다.

북한은 2주 전 표준시 변경을 전격 선언했다. 함께 써오던 표준시를 갑작스레 30분 늦췄다. 서로 논의해도 됐을 사안이다. 우리는 시간표준 잣대가 되는 세슘원자시계 ‘KRISS-1’을 보유하고 있다. 1억년에 1초 오차가 있을 만큼 정확도가 높다.

최근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용산~원산을 잇는 경원선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백마고지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우선 복원할 계획이다. 과학기술계도 표준시 달라지듯 더 멀어지기 전에 구체적인 교류를 시작해야 한다. 70년간 쌓인 남북 간 감정의 골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합치기 쉬운 과학기술분야부터 한 계단 한 계단 딛고 올라가야 한다.

비루스나 고체탄산, 노이론이라고 하면 우린 모른다. 바이러스, 드라이아이스, 뉴런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차분히 하나씩 과학기술계부터 공통분모를 찾아 통일을 만들어가자.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m